단수이라오지에
지리
타이베이(臺北)에서 북서쪽으로 18km 떨어진 단수이강 어귀에 있다. 단수이강의 하구 북쪽에 위치하고, 북쪽은 싼즈구, 남쪽은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와 접하며, 서쪽은 타이완 해협에 접한다. 동쪽은 단수이강을 사이에 둔 빠리구이다. 풍광이 맑고 아름다운 토지로서 알려져 타이완 8경의 하나로 꼽히며 '동방의 베니스'로도 불렸다. 단수이역은 타이베이 MRT인 레드라인의 종점이다.
역사
원래 타이완 원주민 평포족(平埔族) 케타갈란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이 곳을 '호베'로 불렀고 이후 대만어음의 한자로 호미(滬尾) 혹은 호미(虎尾)로 쓰였다. 1624년에 마닐라로부터 스페인인이 진출해 이곳을 점령하고 산 도밍고 요새를 축성했다. 그러나 1642년에 대만 남부를 점령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이들을 축출하고 요새를 재건했다. 또한 이 산 도밍고 요새가 이후의 홍마오청(紅毛城, 홍모성)이다. 1661년에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인을 축출했지만, 1683년의 정씨왕국 멸망 후에 청조의 영토가 되었다. 1858년의 톈진 조약(天津條約)으로 담수항의 개항이 정해졌지만, 이 조약이 비준되지 않았기 때문에, 1860년의 베이징 조약에 의해 조약항으로서 개항되었다. 홍마오청에는 영국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이후 각국의 상관이 모이게 되어, 담수는 19세기 후반에는 대만 최대의 항만으로서 번영했다. 그러나 일본에 의한 통치 시대(1895년~1945년)가 되면서 하구에 모래가 퇴적되어 대형선이 들어가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타이완 총독부는 기룽항(基隆港)을 건설했고 다이호쿠와 기룽의 사이에는 철도도 부설되어 항구의 번영은 기룽으로 옮겨 가 단수이는 작은 어촌이 되었다. 전후, 홍마오청 등 역사적 관광 자원을 여럿 가진 단수이는 점차 관광지로 변모했다. 특히 타이베이 지하철 단수이선의 개통으로 단수이 방면으로의 접근성이 극적으로 향상된 다음에는 타이베이 시민이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관광지로서 번창하게 되었다. 2010년 12월 25일 타이베이현이 신베이시로 개편됨에 따라, 종전 단수이진(淡水鎭)이 단수이구(區)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단수이라오지에
허빈다오루를 따라 거니는 단수이해변산책로는 단수이강과 타이완해협이 만나는 지접에 위치한다. 해변산책로이지만 실제 허빈다오루를 따라 흐르는 것은 바다가 아닌 강물이다. 주말에는 노점이 늘어서서 복잡하지만 주중에는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고, 강 건너 빠리와 위런마터우까지 운행하는 페리선착장이 있다. 단수이 라오지에는 시장, 길거리음식, 카페, 기념품 가게 등 다양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항해를 수호하는 여신인 마조(媽祖)를 모시는 도교사원인 복우궁도 볼거리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대왕 카스테라의 원조 가게가 단수이 라오지에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왕오징어, 아게이 등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