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문
개요
석고문(石鼓文)은 당나라 때 발견된 석각 자료의 일종이다. 북처럼 생긴 큰 돌에 주문/대전 등으로 4언시가 새겨져 있다. 각석연대와 관한 보편적 견해는 진나라 시기의 문자라는 것이다. 석고문은 소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문자로 고문자 자형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는 등의 의의가 있다.
발견
당나라 초 천흥현(지금의 섬서성 봉상현) 총 10개의 흑청색의 단단한 화강암이 발견되었고 현재는 북경의 고궁박물원에 보관되고 있다. 이 돌은 북과 같이 생겼기에 ‘석고(石鼓)’라고 부르게 되었고, 거기에 새겨진 문자를 석고문(石鼓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1]
특징
석고는 1미터 남짓의 높이의 돌 겉면에 각각 60~70자로 된 총 600여 자의 4언시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많이 손상되어 약 2~3백여 글자만 알아볼 수 있고 전해지고 있다. 석고에 새겨진 내용은 주 왕이 수렵을 즐기는 것 등이다.[2]
진나라 계통 문자는 “전국문자(육국고문)와 대립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진나라 통일 당시의 표준글자인 소전을 비롯해, 이의 모체가 되는 통일 이전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문자인 대전 혹은 주문을 지칭한다.” 이러한 진계문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석각자료가 있는데, 석고문의 그중 하나이다.[3]
연대
‘석고문’이 새겨진 연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크게 주(周)의 선왕(宣王) 때로 보는 견해와 진(秦)나라 때로 보는 견해가 있다. 서주 시기의 선왕(宣王) 때의 것으로 보는 것은 석고문의 일부 자형이 주문(籒文)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진(秦)때로 보는 것은 송나라의 한 역사학자(정초鄭樵)이 진나라 계통의 문자와 석고문을 비교한 뒤에 석고문이 진나라의 전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여러 학자들이 따랐고 여러 연구 성과를 통해 대략적으로 춘추전국시기 진나라 때의 문자(춘추시대 말기~전국시대 초기 사이)로 추정하였고 이것이 보편적인 견해로 자리잡았다.하지만, 구체적으로 진나라의 어느 시기인지에 대해서는 통일된 의견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4]
문자형태[5]
석고문은 금문과 소전의 중간단계의 문자이자 서주시대의 자형을 보존하고 있는 문자로, 금문(金文)과 비교하여 구조가 좀 더 복잡한 것이 많이 발견되지만 금문, 주문, 소전과 비슷한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각 자형과 비교해보면, 금문의 경우 ‘모공정’(청동기)등에 새겨진 금문과 비교하였을 때 유사성이 있고, 이를 통해 금문 등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석고문의 많은 자형이 주문과 매우 흡사하여 주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학자들이 석고문을 주문의 대표작이라고 보고 있기도 하다.
소전과 석고문을 비교해보면, 석고문은 소전의 형태에 접근해 있다. 다만, 소전은 석고문보다 장식화되었고 필획이 더 길게 늘어져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소전으로 변화하면서 부수의 위치 변화, 필획 감소 등의 변화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부분을 보았을 때, 석고문을 소전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석고문 자형에 대해 더 살펴보면, 중문이나 합문[6]의 방식을 쓴 글자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갑골문 금문보다 짜임새가 더욱 규범화되었고 상형성이 옅어지며 부호화되어가는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원형에 가깝고 글자의 배치는 균형을 이루었다. 또한, 석고문에서 소박하고 힘차며 중후한 풍격을 느낄 수 있으며, 엄숙함, 호방함, 단정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의의
석고문은 주문을 계승하여 전서 정립에 기여한 중국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각석문자(석각문자) 이다.[7]
소전으로 넘어가기 전 자형의 변천을 볼 수 있어 고문자 자형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또한 석고문 서법의 풍격은 고대서법사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8]
각주
- ↑ 하영삼, 『한자의 세계_기원에서 미래까지』, 신아사, 2013, p.160.
吳濟仲, 「 籒文과 石鼓文의 관계 考察」,『中國語文學論集』제66호, 2011, p.10. - ↑ 하영삼, 『한자의 세계_기원에서 미래까지』, 신아사, 2013, p.160, pp.317-318.
- ↑ 하영삼, 『한자의 세계_기원에서 미래까지』, 신아사, 2013, p.317.
- ↑ 하영삼, 『한자의 세계_기원에서 미래까지』, 신아사, 2013, p.318.
吳濟仲, 「 籒文과 石鼓文의 관계 考察」,『中國語文學論集』제66호, 2011, p.12. - ↑ 이 부분의 참고문헌은 다음과 같다.
吳濟仲, 「 籒文과 石鼓文의 관계 考察」,『中國語文學論集』제66호, 2011, pp.15-16.
李相機, 「 『石鼓文』의 刻石年代 및 字形上의 特徵考」,『中國硏究』제23권, 1999, pp.86~107.
서재선, 「 石鼓文의 특색과 기타 秦系文字 와의 비교」,『동아시아고대학 』제24집, 2011, pp.383-384.
곡계, 사맹해 외, 『중국 서법사의 이해』, 박상영 역, 학고방, 2008, p.36. - ↑ 중문(重文)은 동일한 두 글자에서 두 번째 글자는 =와 같은 부호로 대체하고 첫 글자만 쓰는 방식이며, 합문(合文)은 두 글자를 합서하여 한 글자가 되는 것이다. (李相機,「『石鼓文』의 刻石年代 및 字形上의 特徵考」,『中國硏究』제23권, 1999, p.101.)
- ↑ https://zh.wikipedia.org/wiki/%E7%9F%B3%E9%BC%93%E6%96%87
吳濟仲, 「 籒文과 石鼓文의 관계 考察」,『中國語文學論集』제66호, 2011, p.21. - ↑ 서재선, 「 石鼓文의 특색과 기타 秦系文字 와의 비교」,『동아시아고대학 』제24집, 2011, pp.383-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