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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자는 宀 과 呂를 따르고 宀 은 집의 형상이고 呂는 집이 아주 많고, 서로 이어지는 것의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宮의 본의는 비교적 큰 가옥 건축물 혹은 건축물 집단 등을 가리킨다. 후세의 宮은 황제가 거주하고 있는 집이나 지역을 전적으로 가리킨다. 또한 종묘, 사찰, 도교사원 등의 대형 건축물 또는 집단 건축물을 가리켜 宮이라고 하였다. 宮은 또한 일반적으로 보통의 집도 가리킬 수 있다.
 
宮자는 宀 과 呂를 따르고 宀 은 집의 형상이고 呂는 집이 아주 많고, 서로 이어지는 것의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宮의 본의는 비교적 큰 가옥 건축물 혹은 건축물 집단 등을 가리킨다. 후세의 宮은 황제가 거주하고 있는 집이나 지역을 전적으로 가리킨다. 또한 종묘, 사찰, 도교사원 등의 대형 건축물 또는 집단 건축물을 가리켜 宮이라고 하였다. 宮은 또한 일반적으로 보통의 집도 가리킬 수 있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宫, 집을 일컬으며, “宀”의 의미와 “躳”의 소리로 구성되고 사실 “宫“은 [[상형]]자다. 갑골문 그림을 보면 테두리 안에 2-3개의 네모난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2개 이상의 방이나 창문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 소전의 자형도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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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에 따르면 “宫, 집을 일컬으며, “宀”의 의미와 “躳”의 소리로 구성되고 사실 “宫“은 [[상형]]자다. 갑골문 그림을 보면 테두리 안에 2-3개의 네모난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2개 이상의 방이나 창문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 [[소전]]의 자형도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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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해석은 문과 창문이 있는 집의 형상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신석기 시대 유물 중 宮과 모습이 비슷한 진흙 모조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ref>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p.273</ref>  하지만, 이것은 후에 宮자가 궁궐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과정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또 다른 해석은 문과 창문이 있는 집의 형상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신석기 시대 유물 중 宮과 모습이 비슷한 진흙 모조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ref>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p.273</ref>  하지만, 이것은 후에 宮자가 궁궐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과정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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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갑골문에서 창문을 낸 집을 그려 ‘가옥’이라는 의미를 그렸는데, 두 개의 창문이 呂(음률 려)로 변해 지금의 자형이 되었다. 진시황 때 이르러 자신이 사는 궁궐을 宮이라 하고, 일반인들이 사는 집은 家로 구분하여 썼고, 이후 궁궐이라는 의미로 축소 사용되었다. 달리 五音(오음, 궁/상각/치/우)의 하나를 지칭하기도 했다. 간화자에서 원래의 자형으로 돌아갔다.<ref>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9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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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 집을 나타내는 宮의 갑골문은 분리된 방의 기초 또는 여러 개의 방이 규칙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초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 글자는 한 지붕 아래 몇 개의 다른 방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어떤 자형에는 반듯한 건물기초 위에 지붕을 나타내는 요소가 첨가되어 있다. 점차 다수의 방을 가진 가옥이 보편화되었지만 초기의 이러한 건축물은 주요한 정치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어서, 사람들은 이것을 화려하고 훌륭한 건물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래서 宮자는 대궐·종묘를 의미하게 되었다.<ref>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25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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宀(면)으로 구성되었고 躳(궁)의 생략형이 발음을 나타낸다. 宮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宮의 의미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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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아석〮궁≫에서 “宮을 실(室)이라 하고 室을 宮이라 한다” 하였는데 곽박이 “(宮과 室을 이렇게)풀이해 주는 것은 고금의 다른 이름을 서로 통하게 하는 방법이다. 실제는 같은 것인데 이름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 준다” 라고 말하였다. 내 생각에는 宮이란 그 밖의 테두리를 말한 것이고 室은 그 안을 말한 것이다. 석언하면 다르지만 통언하면 구별하지 않는다. ≪모시≫에서 “초궁(楚宮)을 짓는다”라고 하고 “초실(楚室)을 짓는다”라고 하였는데 모전<에서는 “室과 宮은 같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둘이 통언한 것이다. 宮은 (본래 의미가) 집의 둘러친 주위를 말한 것에서 시작하여 그 가운데 있는 것을 宮이라고 하게 되었다. 오음인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에 대해 유흠은 “宮은 가운데(中)이다. 가운데 있으면서 사방의 소리에 화답하여 노래한다. 처음 노래하기 시작하므로 나머지 네 가지 소리의 벼리가 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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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생각에는 宮을 설명 하면서 . 宀과 呂로 구성된 회의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宀은 그 밖을 두르는 것이고 呂는 가운데에 있다는 의미이다. 呂는 척추뼈라는 뜻이다. 사람의 몸 가운데에 있다. 宮의 발음은 居(거)와 戎(융)의 반절이다.<ref>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33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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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2022년 12월 22일 (목) 11:05 기준 최신판

語源

집 궁.png

宮자는 宀 과 呂를 따르고 宀 은 집의 형상이고 呂는 집이 아주 많고, 서로 이어지는 것의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宮의 본의는 비교적 큰 가옥 건축물 혹은 건축물 집단 등을 가리킨다. 후세의 宮은 황제가 거주하고 있는 집이나 지역을 전적으로 가리킨다. 또한 종묘, 사찰, 도교사원 등의 대형 건축물 또는 집단 건축물을 가리켜 宮이라고 하였다. 宮은 또한 일반적으로 보통의 집도 가리킬 수 있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宫, 집을 일컬으며, “宀”의 의미와 “躳”의 소리로 구성되고 사실 “宫“은 상형자다. 갑골문 그림을 보면 테두리 안에 2-3개의 네모난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2개 이상의 방이나 창문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 소전의 자형도 이와 비슷하다.

文化

宮의 고대 문자 형태를 바라보는 다른 여러 시각들이 있다. 첫 째는, 두 개의 방을 설계한 도면에 宀이 더해졌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宮자가 宀이 없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는 후에 진나라 시기, 문자통일 과정에서 하나의 동일한 범주(건축물) 속에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宀자가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1] 하지만, 위의 자형변화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도 宀이 포함된 형태들이 보인다. 따라서 이 해석은 宀이 포함되지 않는 글자들만 살펴보고 내린 성급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은 문과 창문이 있는 집의 형상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신석기 시대 유물 중 宮과 모습이 비슷한 진흙 모조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2] 하지만, 이것은 후에 宮자가 궁궐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과정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회의. 갑골문에서 창문을 낸 집을 그려 ‘가옥’이라는 의미를 그렸는데, 두 개의 창문이 呂(음률 려)로 변해 지금의 자형이 되었다. 진시황 때 이르러 자신이 사는 궁궐을 宮이라 하고, 일반인들이 사는 집은 家로 구분하여 썼고, 이후 궁궐이라는 의미로 축소 사용되었다. 달리 五音(오음, 궁/상각/치/우)의 하나를 지칭하기도 했다. 간화자에서 원래의 자형으로 돌아갔다.[3]

대궐, 집을 나타내는 宮의 갑골문은 분리된 방의 기초 또는 여러 개의 방이 규칙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초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 글자는 한 지붕 아래 몇 개의 다른 방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어떤 자형에는 반듯한 건물기초 위에 지붕을 나타내는 요소가 첨가되어 있다. 점차 다수의 방을 가진 가옥이 보편화되었지만 초기의 이러한 건축물은 주요한 정치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어서, 사람들은 이것을 화려하고 훌륭한 건물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래서 宮자는 대궐·종묘를 의미하게 되었다.[4]

宀(면)으로 구성되었고 躳(궁)의 생략형이 발음을 나타낸다. 宮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宮의 의미를 따른다. (1) ≪아아석〮궁≫에서 “宮을 실(室)이라 하고 室을 宮이라 한다” 하였는데 곽박이 “(宮과 室을 이렇게)풀이해 주는 것은 고금의 다른 이름을 서로 통하게 하는 방법이다. 실제는 같은 것인데 이름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 준다” 라고 말하였다. 내 생각에는 宮이란 그 밖의 테두리를 말한 것이고 室은 그 안을 말한 것이다. 석언하면 다르지만 통언하면 구별하지 않는다. ≪모시≫에서 “초궁(楚宮)을 짓는다”라고 하고 “초실(楚室)을 짓는다”라고 하였는데 모전<에서는 “室과 宮은 같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둘이 통언한 것이다. 宮은 (본래 의미가) 집의 둘러친 주위를 말한 것에서 시작하여 그 가운데 있는 것을 宮이라고 하게 되었다. 오음인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에 대해 유흠은 “宮은 가운데(中)이다. 가운데 있으면서 사방의 소리에 화답하여 노래한다. 처음 노래하기 시작하므로 나머지 네 가지 소리의 벼리가 된다.”라고 하였다.

(2) 내 생각에는 宮을 설명 하면서 . 宀과 呂로 구성된 회의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宀은 그 밖을 두르는 것이고 呂는 가운데에 있다는 의미이다. 呂는 척추뼈라는 뜻이다. 사람의 몸 가운데에 있다. 宮의 발음은 居(거)와 戎(융)의 반절이다.[5]

  1.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p.273
  2.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p.273
  3.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93
  4.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259
  5.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