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羔자는 '새끼 양'을 나타내는 글자로, 갑골문에서는 '양 머리([[羊]])'를 형상화한 가운데 부분의 문자와 '작다([[小]])'를 뜻하는 문자인 주변의 작은 점들을 합쳐 작은 양, 즉 새끼 양을 표현한다. [[금문]]에서는 이 작은 점들을 굵은 선으로 대체하여 표현한다. 이후 고새문(古玺文)에서 굵은 선들을 '불 화([[火]])'로 대체해버리고, [[소전]]에서 이러한 형태를 사용하여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새끼 양을 불에 구워먹는 등의 의미로 변질되어 확장되었다. 또한 [[예서]]에서는 火를 간결하게 세 개 혹은 네 개의 점으로 표현하였다.<ref>熊国英,『图释古汉字』, 齐鲁书社, p.69</ref>
 
羔자는 '새끼 양'을 나타내는 글자로, 갑골문에서는 '양 머리([[羊]])'를 형상화한 가운데 부분의 문자와 '작다([[小]])'를 뜻하는 문자인 주변의 작은 점들을 합쳐 작은 양, 즉 새끼 양을 표현한다. [[금문]]에서는 이 작은 점들을 굵은 선으로 대체하여 표현한다. 이후 고새문(古玺文)에서 굵은 선들을 '불 화([[火]])'로 대체해버리고, [[소전]]에서 이러한 형태를 사용하여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새끼 양을 불에 구워먹는 등의 의미로 변질되어 확장되었다. 또한 [[예서]]에서는 火를 간결하게 세 개 혹은 네 개의 점으로 표현하였다.<ref>熊国英,『图释古汉字』, 齐鲁书社, p.69</ref>

2020년 12월 22일 (화) 23:58 기준 최신판

語源

새끼양고.PNG

羔자는 '새끼 양'을 나타내는 글자로, 갑골문에서는 '양 머리()'를 형상화한 가운데 부분의 문자와 '작다()'를 뜻하는 문자인 주변의 작은 점들을 합쳐 작은 양, 즉 새끼 양을 표현한다. 금문에서는 이 작은 점들을 굵은 선으로 대체하여 표현한다. 이후 고새문(古玺文)에서 굵은 선들을 '불 화()'로 대체해버리고, 소전에서 이러한 형태를 사용하여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새끼 양을 불에 구워먹는 등의 의미로 변질되어 확장되었다. 또한 예서에서는 火를 간결하게 세 개 혹은 네 개의 점으로 표현하였다.[1]


文化

수렵단계의 원시인들에게 羊은 양식과 가죽을 제공하는 최상품이었다. 더구나 羊은 군집생활을 하며 성질 또한 온순해 정착 농경시대에 접어든 인간의 입장에서 가축으로 기르기에 적합했다.[2]

羔자는 火와 羊이 결합한 글자인데, 羊자는 양의 외형상 가장 큰 특징인 곡선 모양의 뿔을 상형화한 글자로, 양을 불 위에 놓고 굽는 모습을 띤다. 새끼양은 어미 양의 젖을 먹어 그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기 때문에 즐겨먹었던 까닭인지 '새끼 양'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周礼>에서 말하기를 “모든 제사는 새끼 양으로 장식한다.” 제사에는 반드시 온갖 제물이 있어야 하고, 큰 양을 바싹 굽는 것은 쉽지 않다. 설령 겉이 까맣게 타더라도 안은 여전히 날것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오로지 작은 양을 구웠고, 그리하여 羔는 어린 양(小羊)에서 파생되었다. 구워진 어린 양 고기는 그 맛을 비교할 데가 없고,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싶어 침을 흘리게 한다.[3]

한편 양을 나타내는 두 글자가 합쳐진 '羔羊'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염소와 양'이라는 뜻 외에도 중국 주(周)나라 때 대부(大夫)들이 양가죽 옷을 입었던 것에 비유하여, 검소하고 정직한 벼슬아치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4]

≪图释古汉字≫에서는 羔자에 대한 해석을 조금 달리하고 있다. 왼쪽의 갑골문은 양의 뿔과 네 개의 점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네 개의 점을 小자라고 설명해 말 그대로 '小羊'이라는 뜻의 회의자라고 설명한다. 이후 금문에서 점이 사라지고, 그 형태가 火자로 바뀌었으며, 새끼 양이 맛있다는 의미가 더해졌다고 설명한다.

  1. 熊国英,『图释古汉字』, 齐鲁书社, p.69
  2. 연상한자, 하영삼, 예담, p.230.
  3. 廖文豪,『漢字樹 4』,(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4. 네이버 지식백과, ≪시경(詩經)≫ 국풍(國風) 소남(召南) 고양에 “양가죽을 흰 실 다섯 타래로 꾸몄네. 관아에서 퇴근하니, 그 모습 당당하고 여유있네[羔羊之皮 素絲五紽 退食自公 委蛇委蛇]”라고 하여, 대부들이 문왕(文王)의 교화를 입어 검소하고 정직한 것을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