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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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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노자(老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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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노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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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시기 = 춘추시대 말기(기원전 5~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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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활동 = 도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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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 = 노자(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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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초]]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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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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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는『[[사기]]』의 '노장신한열전'에 따르면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의 [[춘추]]시대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字)는 담(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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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무위자연' 등을 주장하는 [[도가]] 사상을 창시하였으며, 훗날 [[도교]]의 사상적 뿌리를 제공했다. 그는 우주 만물에 대해 깊게 연구했고, 이를 통해 만물의 '도'를 발견했다. 그의<br> 대표적인 저서로는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가 있으며 후대의 여러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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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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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춘추]]시대 말기 사람으로 [[초]]나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부처의 기적적인 탄생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 노자의 어머니는 노자를 72년간 임신하고 있었고, 노자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이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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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신화는 노자의 성(性)의 유래에 대해 설명한다. 노자는 오얏나무(李木)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얏나무를 상징하는 이(李)가 그의 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그의 고향 고현(지금의 허난성)이 진나라 영토였지만, 기원전 479년 초나라 혜왕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초]]나라의 영토로 복속되었다. <b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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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춘추]] 시대 말기 주나라의 장서를 관리하는 관리였다. 그는 천문, 점성 등을 전담하는 학자였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젊은 공자와의 만남이야기가 있다. 이 만남은 늙은 노자가 젊은 [[공자]]의 오만과 야망을 질책했고, [[공자]]가 이에 감동받아 노자를 높였다는 내용인데, 문헌들간의 일관성이 부족해 단순히 전설로 평가받기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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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춘추]]시대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 전역의 혼란을 몸소 겪었다. [[춘추]]시대는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제자백가가 등장하면서 서양의 르네상스 시기처럼 학문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제자백가 중 하나였던 노자는 '무위자연' 등을 기치로 하는 [[도교]]를 창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경을 저술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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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당시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상을 유가사상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사회의 혼란 원인이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사물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회 제도 때문에 혼란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본래 순수하고 소박한 자연의 덕을 가지고 있었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사물의 겉모습을 판단하게 되고, 오해로부터 시작된 사물의 겉모습에 이끌려서 사물의 본질이나 가치를 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고 보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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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노자는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고, 자연히 이끌리는 삶을 살아갈 때 고통과 혼란 없이 초연히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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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덕경을 저술한 이야기 또한 전설이라는 등 논란이 있다. [[사마천]]에 의하면 노자가 주나라가 쇠망해가는 것을 보고 주나라를 떠나는데, 도중에 [[진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인 함곡관에서 관문지기 윤희에게 책을 써주었다고 한다. 5000언으로 이루어진 이 상편, 하편의 저서는 바로 노자가 도와 덕의 뜻을 말한 도덕경이다. 도덕경을 쓴 뒤 서쪽으로 떠난 노자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사마천은 서술하고 있다. 노자의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사마천]]은 그가 은군자였음을 들었다. [[도교]] 사상을 주창한 노자는 작위(作爲)되어진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저절로 교화되는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기 자신 또한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신의 교화를 추구한 은자(隱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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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 대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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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노자의 생애에 대해 서술했지만 사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먼저 그가 실존했는지 여부조차도 논란이 많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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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시기적으로 곧자와 같은 때의 인물이며 도가의 정신에 대해 책15권을 서술한 초나라의 노래자라는 설도 있고, 주나라의 태사이자 점성술가인 담(聃)이 [[진(秦)]]의 헌공을 만났다는 기록을 통해 담(聃)이 노자라는 설도 있다. 또한 기존에 노자가 쓴 것으로 생각되었던 '도덕경'이라는 책은 오늘날 1명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의견이며 여러 명이 쓴 저서로 여겨지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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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내용이 공자 시대의 것도 있지만 다른 내용은 훨씬 후대의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책이 BC 300년 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개인이라기보다 [[도가]] 사상을 지닌 특정형태의 성인집단이 노자이며, 이들이 '도덕경' 또한 저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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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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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도가]] 사상의 창시자로 그의 생각을 담아 도덕경을 저술했다. 도덕경은 총 81장 5000언으로 구성되어 있고, <도>와 <덕>에 대한 그의 생각이 기록되어 있다. 도덕경의 81장은 상편,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편의 내용은 <도>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고, 하편의 내용은 <덕>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를 통해 그의 도론, 덕론, 도술, 병술 그리고 그가 생각한 이상사회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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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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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노자의 '도'는 절대먹이고 본원적인 것이었다. 인, 의, 충 등 인간의 덕목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공자의 유교적 '도'와 달리 노자의 '도'는 인간의 올바른 도리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인간과 만물과 우주 전체의 본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즉 노자의 도는 인간의 존재 이전의 우주의 본원이며 만물의 생성과 존재의 법칙인 것이다. <상편>의 25장을 보면 그가 주장한 '도'에 대해서 찾아볼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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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이 혼돈히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의 생성보다도 앞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형체도 없지만, 홀로 존재하며 바뀌어지지 않고, 모든 것에 두루 행하여지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br>천하의 모체라 할 만한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라고 이름 지었고, 억지로 그것을 대(大)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 '상편' 제25장<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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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존재는 '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고, '도'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노자에게 있어서 '도'란 인간의 지성의 한계를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어서, 사람으로서는 그 존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어렵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노자는 이러한 '도'에 관한 연구를 중시하였고, 그에 따라 그의 학파가 <도가>가 되고 그들의 사상이 <도가 사상>이 되었다.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 '도'는 '만물 생성의 본원'이다. 그러나 노자에 의하면 더 나아가 동시에 만물을 변화하게 하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상편'의 34장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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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도는 장마물처럼 왼편, 오른편 어디에나 있다. 만물은 이것에 힘입어 생성되고 있지만 그것을 내세워 얘기하지 않으며, 공을 이룩하고서도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만물을 입혀주고 길러주고 하면서도<br>그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바라는 게 없어 작은 존재라 부르기 일쑤이다. 그러나 만물이 그에게로 되돌아가는데도 그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니 위대한 존재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br>그의 위대한 업적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상편' 제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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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어디에나 있으면서 만물을 생성케 하고 또한 변하게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는 그러한 능력이나 공로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의 존재조차도 잘 알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는 '상편'의 37장에서 또한 찾을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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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란 없는 것이다. - '상편' 제37장<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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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도'의 작용은 만물을 생성시키고 존재하게 하지만 만물에게 어떠한 의식적인 작위도 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도가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위'가 등장한다. '도'는 모든 것을 생성하고 키워주면서도 '언제나 욕심이 없음'으로 만물을 차지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노자는 이러한 '도'의 특성을 중시했고, 이를 통해 사람의 <무위>한 '도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이 '도'를 따라야 한다고 본 그는 도에 합치되는 <자연>스럽다에 주목했다. 자연이란 아무런 작위나 의식도 가해지지 않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 존재나 변화의 의식조차도 가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궁극적인 상태를 말한다. 그리하여 노자는 무위하고 욕심도 없는 상태의 '자연'을 따르는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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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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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통해 발휘되는 '도'의 표현이다. 따라서 '도'에 대한 개념이 곧 '덕'을 결정하게 된다. 노자는 먼저 '덕'을 상급의 덕과 하급의 덕으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덕경'의 38장에서 '상급의 덕은 무위하며 행위의 목적이 없다'고 하며, '하급의 덕은 유위하며 행위의 목적이 있다'고 한다. 즉 노자는 '도'의 무위함을 근거로 '덕'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덕'은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수양이나 교양 정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상급의 덕'과 '하급의 덕'이 등장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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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상급의 덕'을 지닌 사람은 오직 도만을 쫓아서 그의 덕을 덕으로 의식하지 않고, 집착하는 일도 없고 작용을 가하는 일도 없게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덕을 지니고서 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되고 일부러 하지 않아도 성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덕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것을 덕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게 된다. '하급의 덕'은 추구하여 그것을 취득하고, 의식적으로 행해서 그것을 성취한다. 선한 것을 내세우고 사물을 처리한다. 그래서 덕이 있다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추구하여 취득하면 반드시 그것을 잃게 되고, 의식적으로 행하여 성취하면 반드시 그것은 실패하게 된다. 노자는 인, 의, 예 같은 것들이 목적을 가진 하급의 덕이라고 보았다. 노자가 이렇게 무위하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텅 비게 됨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 뜻이 제약당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텅 비어야 덕이 성하게 되고 덕이 성한 것을 '상급의 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한편, 덕경에서는 성인이라는 말이 자주 인용되는데 여기서 언급하는 성인은 노자가 생각하기에 '완전한 덕을 지닌 사람'이다. 성인은 무위하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모든 것을 이루는 사람이다. 곧 성인은 노자에게 있어 그의 도덕론의 이상적인 체현자이다. 노자는 '하편' 제2장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인에 대해 이야기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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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인은 무위하게 일에 처신하며,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다. 만물을 생성시키고도 얘기하지 않으며, 생겨나게 하고도 그것을 갖지 않으며, 행동을 하더라도 의지하는 데가 없으며, 공로를 이룩하더라도 그것을 내세우지 않는다.<br>그들은 스스로 공로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공로가 그에게서 떠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 '하편' 제2장<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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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인이 도를 따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성인은 무위한 도를 따르며 지극한 덕을 이룩한 이상적인 인간에 대한 노자의 칭호이다. 이 때문에 성인에 대한 그의 설명을 통하여 '노자의 덕'에 대해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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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미친 영향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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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중국 문화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선진시대에 [[도가]] 학파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비록 노자의 사상은 공자의 [[유학]]처럼 중국 봉건사회의 정통 사상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학]]에 반대하면서 계승, 발전했고 중국인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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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상은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주류 사상이 되기도 했고, 우주생성론과 우주본체론에 있어서 즉, 중국 문화의 철학적 기초와 체계를 세우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만약 노자의 [[도가 ]]철학이 없었다면 중국 고대의 찬란한 사상과 문화는 꽃피지 못했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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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사상은 후대에 여러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손자]], 범려, [[장자]], [[순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철학은 선진 시기 황로학에도 영향을 주었고 특히 위진 [[현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위진시대에는 노장 철학을 숭상하는 현학 사조가 등장하였고 당시 사회를 지해하는 사조가 되었다. 노장사상은 하안과 왕필로 대표되는 현학 귀무파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완적과 혜강 등 '죽림칠현'의 등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들 [[죽림 칠현]]은 허위로 가득찬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자연으로 들어가 살고자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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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사상은 이에 뿌리를 둔 [[도교]]의 탄생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는데 이를 통해 중국의 전통문화인 유, 불, 도 3교가 성립하며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입된 종교인 [[불교]]에도 도가 사상을 영향을 미쳤고 [[위진남북조]] 시기 중국 문화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중국 역사에 있어서 노자의 도가 사상은 대표 사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시기와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그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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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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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주, 『노자와 도가사상』, 명문당, 2007<br>
 +
쉬캉성 저, 유희재·신창호 역 , 『노자 평전』, 미다스북스, 2002<br>
 +
야오간밍 저, 손성하 옮김, 『노자 강의』, 김영사, 2006
  
|이름 = 노자(老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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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물]]
|그림 = 노자.jpg
 
|출생~사망 = 미상
 
|출생국가 = 초나라
 
|관련 사상 = 도교(노장사상)
 
|주요 작품 = 도덕경
 
}}
 

2017년 6월 28일 (수) 14:19 기준 최신판

노자(老子)

생존시기 춘추시대 말기(기원전 5~6세기)
주요 작품 노자(도덕경)
관련 활동 도가사상

개요

노자(老子)는『사기』의 '노장신한열전'에 따르면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의 춘추시대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字)는 담(聃)이다.
노자는 '무위자연' 등을 주장하는 도가 사상을 창시하였으며, 훗날 도교의 사상적 뿌리를 제공했다. 그는 우주 만물에 대해 깊게 연구했고, 이를 통해 만물의 '도'를 발견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가 있으며 후대의 여러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생애

노자는 춘추시대 말기 사람으로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부처의 기적적인 탄생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 노자의 어머니는 노자를 72년간 임신하고 있었고, 노자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이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또 다른 신화는 노자의 성(性)의 유래에 대해 설명한다. 노자는 오얏나무(李木)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얏나무를 상징하는 이(李)가 그의 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그의 고향 고현(지금의 허난성)이 진나라 영토였지만, 기원전 479년 초나라 혜왕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나라의 영토로 복속되었다.

노자는 춘추 시대 말기 주나라의 장서를 관리하는 관리였다. 그는 천문, 점성 등을 전담하는 학자였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젊은 공자와의 만남이야기가 있다. 이 만남은 늙은 노자가 젊은 공자의 오만과 야망을 질책했고, 공자가 이에 감동받아 노자를 높였다는 내용인데, 문헌들간의 일관성이 부족해 단순히 전설로 평가받기도 한다.
노자는 춘추시대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 전역의 혼란을 몸소 겪었다. 춘추시대는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제자백가가 등장하면서 서양의 르네상스 시기처럼 학문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제자백가 중 하나였던 노자는 '무위자연' 등을 기치로 하는 도교를 창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경을 저술했다.
노자는 당시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상을 유가사상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사회의 혼란 원인이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사물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회 제도 때문에 혼란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본래 순수하고 소박한 자연의 덕을 가지고 있었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사물의 겉모습을 판단하게 되고, 오해로부터 시작된 사물의 겉모습에 이끌려서 사물의 본질이나 가치를 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노자는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고, 자연히 이끌리는 삶을 살아갈 때 고통과 혼란 없이 초연히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도덕경을 저술한 이야기 또한 전설이라는 등 논란이 있다. 사마천에 의하면 노자가 주나라가 쇠망해가는 것을 보고 주나라를 떠나는데, 도중에 진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인 함곡관에서 관문지기 윤희에게 책을 써주었다고 한다. 5000언으로 이루어진 이 상편, 하편의 저서는 바로 노자가 도와 덕의 뜻을 말한 도덕경이다. 도덕경을 쓴 뒤 서쪽으로 떠난 노자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사마천은 서술하고 있다. 노자의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사마천은 그가 은군자였음을 들었다. 도교 사상을 주창한 노자는 작위(作爲)되어진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저절로 교화되는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기 자신 또한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신의 교화를 추구한 은자(隱者)였다.

노자에 대한 의혹

앞서 노자의 생애에 대해 서술했지만 사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먼저 그가 실존했는지 여부조차도 논란이 많다.
노자가 시기적으로 곧자와 같은 때의 인물이며 도가의 정신에 대해 책15권을 서술한 초나라의 노래자라는 설도 있고, 주나라의 태사이자 점성술가인 담(聃)이 진(秦)의 헌공을 만났다는 기록을 통해 담(聃)이 노자라는 설도 있다. 또한 기존에 노자가 쓴 것으로 생각되었던 '도덕경'이라는 책은 오늘날 1명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의견이며 여러 명이 쓴 저서로 여겨지고 있다.
도덕경의 내용이 공자 시대의 것도 있지만 다른 내용은 훨씬 후대의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책이 BC 300년 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개인이라기보다 도가 사상을 지닌 특정형태의 성인집단이 노자이며, 이들이 '도덕경' 또한 저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덕경의 내용

노자는 도가 사상의 창시자로 그의 생각을 담아 도덕경을 저술했다. 도덕경은 총 81장 5000언으로 구성되어 있고, <도>와 <덕>에 대한 그의 생각이 기록되어 있다. 도덕경의 81장은 상편,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편의 내용은 <도>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고, 하편의 내용은 <덕>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를 통해 그의 도론, 덕론, 도술, 병술 그리고 그가 생각한 이상사회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도론>

먼저 노자의 '도'는 절대먹이고 본원적인 것이었다. 인, 의, 충 등 인간의 덕목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공자의 유교적 '도'와 달리 노자의 '도'는 인간의 올바른 도리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인간과 만물과 우주 전체의 본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즉 노자의 도는 인간의 존재 이전의 우주의 본원이며 만물의 생성과 존재의 법칙인 것이다. <상편>의 25장을 보면 그가 주장한 '도'에 대해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물건이 혼돈히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의 생성보다도 앞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형체도 없지만, 홀로 존재하며 바뀌어지지 않고, 모든 것에 두루 행하여지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모체라 할 만한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라고 이름 지었고, 억지로 그것을 대(大)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 '상편' 제25장

노자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존재는 '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고, '도'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노자에게 있어서 '도'란 인간의 지성의 한계를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어서, 사람으로서는 그 존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어렵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노자는 이러한 '도'에 관한 연구를 중시하였고, 그에 따라 그의 학파가 <도가>가 되고 그들의 사상이 <도가 사상>이 되었다.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 '도'는 '만물 생성의 본원'이다. 그러나 노자에 의하면 더 나아가 동시에 만물을 변화하게 하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상편'의 34장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위대한 도는 장마물처럼 왼편, 오른편 어디에나 있다. 만물은 이것에 힘입어 생성되고 있지만 그것을 내세워 얘기하지 않으며, 공을 이룩하고서도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만물을 입혀주고 길러주고 하면서도
그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바라는 게 없어 작은 존재라 부르기 일쑤이다. 그러나 만물이 그에게로 되돌아가는데도 그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니 위대한 존재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상편' 제34장

'도'는 어디에나 있으면서 만물을 생성케 하고 또한 변하게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는 그러한 능력이나 공로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의 존재조차도 잘 알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는 '상편'의 37장에서 또한 찾을 수 있다.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란 없는 것이다. - '상편' 제37장

이를 통해 '도'의 작용은 만물을 생성시키고 존재하게 하지만 만물에게 어떠한 의식적인 작위도 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도가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위'가 등장한다. '도'는 모든 것을 생성하고 키워주면서도 '언제나 욕심이 없음'으로 만물을 차지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노자는 이러한 '도'의 특성을 중시했고, 이를 통해 사람의 <무위>한 '도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이 '도'를 따라야 한다고 본 그는 도에 합치되는 <자연>스럽다에 주목했다. 자연이란 아무런 작위나 의식도 가해지지 않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 존재나 변화의 의식조차도 가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궁극적인 상태를 말한다. 그리하여 노자는 무위하고 욕심도 없는 상태의 '자연'을 따르는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

<덕론>

'덕'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통해 발휘되는 '도'의 표현이다. 따라서 '도'에 대한 개념이 곧 '덕'을 결정하게 된다. 노자는 먼저 '덕'을 상급의 덕과 하급의 덕으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덕경'의 38장에서 '상급의 덕은 무위하며 행위의 목적이 없다'고 하며, '하급의 덕은 유위하며 행위의 목적이 있다'고 한다. 즉 노자는 '도'의 무위함을 근거로 '덕'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덕'은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수양이나 교양 정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상급의 덕'과 '하급의 덕'이 등장한다.
노자는 '상급의 덕'을 지닌 사람은 오직 도만을 쫓아서 그의 덕을 덕으로 의식하지 않고, 집착하는 일도 없고 작용을 가하는 일도 없게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덕을 지니고서 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되고 일부러 하지 않아도 성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덕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것을 덕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게 된다. '하급의 덕'은 추구하여 그것을 취득하고, 의식적으로 행해서 그것을 성취한다. 선한 것을 내세우고 사물을 처리한다. 그래서 덕이 있다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추구하여 취득하면 반드시 그것을 잃게 되고, 의식적으로 행하여 성취하면 반드시 그것은 실패하게 된다. 노자는 인, 의, 예 같은 것들이 목적을 가진 하급의 덕이라고 보았다. 노자가 이렇게 무위하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텅 비게 됨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 뜻이 제약당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텅 비어야 덕이 성하게 되고 덕이 성한 것을 '상급의 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한편, 덕경에서는 성인이라는 말이 자주 인용되는데 여기서 언급하는 성인은 노자가 생각하기에 '완전한 덕을 지닌 사람'이다. 성인은 무위하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모든 것을 이루는 사람이다. 곧 성인은 노자에게 있어 그의 도덕론의 이상적인 체현자이다. 노자는 '하편' 제2장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성인은 무위하게 일에 처신하며,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다. 만물을 생성시키고도 얘기하지 않으며, 생겨나게 하고도 그것을 갖지 않으며, 행동을 하더라도 의지하는 데가 없으며, 공로를 이룩하더라도 그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공로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공로가 그에게서 떠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 '하편' 제2장

이는 성인이 도를 따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성인은 무위한 도를 따르며 지극한 덕을 이룩한 이상적인 인간에 대한 노자의 칭호이다. 이 때문에 성인에 대한 그의 설명을 통하여 '노자의 덕'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후대에 미친 영향과 평가

노자는 중국 문화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선진시대에 도가 학파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비록 노자의 사상은 공자의 유학처럼 중국 봉건사회의 정통 사상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학에 반대하면서 계승, 발전했고 중국인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은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주류 사상이 되기도 했고, 우주생성론과 우주본체론에 있어서 즉, 중국 문화의 철학적 기초와 체계를 세우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만약 노자의 도가 철학이 없었다면 중국 고대의 찬란한 사상과 문화는 꽃피지 못했을 것이다.
노자 사상은 후대에 여러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손자, 범려, 장자, 순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철학은 선진 시기 황로학에도 영향을 주었고 특히 위진 현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위진시대에는 노장 철학을 숭상하는 현학 사조가 등장하였고 당시 사회를 지해하는 사조가 되었다. 노장사상은 하안과 왕필로 대표되는 현학 귀무파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완적과 혜강 등 '죽림칠현'의 등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들 죽림 칠현은 허위로 가득찬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자연으로 들어가 살고자 했다.
노자의 사상은 이에 뿌리를 둔 도교의 탄생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는데 이를 통해 중국의 전통문화인 유, 불, 도 3교가 성립하며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입된 종교인 불교에도 도가 사상을 영향을 미쳤고 위진남북조 시기 중국 문화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중국 역사에 있어서 노자의 도가 사상은 대표 사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시기와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그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참고문헌

김학주, 『노자와 도가사상』, 명문당, 2007
쉬캉성 저, 유희재·신창호 역 , 『노자 평전』, 미다스북스, 2002
야오간밍 저, 손성하 옮김, 『노자 강의』, 김영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