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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의 사목(四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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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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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방상씨1.jpeg|250픽셀|오른쪽|출처:https://baike.baidu.com/item/方相氏/9882969?fr=aladdin#5]]
|이름=방상씨
 
|그림=[[파일:방상씨1.jpeg|250픽셀|가운데]]
 
|중문명=放相氏(fāng xiāng shì)<ref>百度百科, "方相氏", https://baike.baidu.com/item/方相氏/9882969?fr=aladdin#5, (2019.12.23.).</ref>
 
|상급관원=사마(司馬)
 
|원자료=주례(周禮)
 
|역할=역병을 물리치고 액막이를 하는 신(驱疫避邪的神)
 
}}
 
  
 
==개요==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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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相氏(fāng xiāng shì); 방상씨는 고대 민간 신앙의 신이다. 중국 전통 사회에서 악귀를 몰아내는 직관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역병을 물리치고 액막이를 하는 신[驱疫避邪的神]을 의미한다. 방상씨는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掌蒙熊皮], 황금빛의 네 눈에[黃金四目], 검은 저고리와 붉은 치마[玄衣朱裳]를 입고, 창과 방패를 들고서 나라의 역병을 쫓아낸다. 궁정에서 방상씨가 역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중국어로 ‘대나(大傩)’라고 한다. 의식은 계춘(季春, 늦은 봄), 중추(仲秋,가을의 두 번째 달), 그리고 계동(季冬, 음력 섣달), 세 번에 걸쳐 매년 이루어진다. 제야[除夕夜]에 거행되는 역귀를 쫓아내는 의식이 가장 성대하다.<ref>百度百科, "方相氏", https://baike.baidu.com/item/方相氏/9882969?fr=aladdin#5, (2019.12.2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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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로서의 방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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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는 관명 중 하나이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하관(夏官) 사마(司馬) 아래에 방상씨라는 관직이 있었고, 그 외모가 공포스럽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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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周禮)﹒하관(夏官)》에는 방상씨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방상씨의 외적 형상을 설명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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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는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황금빛을 띤 네 눈에 검은 저고리 붉은 치마를 입고 창을 들고 방패를 가지고서 백예(百隷)를 거느리고 철에 따라 '나'를 행하면서 집안을 뒤져 역귀를 몰아내었다."''<ref>구푸광, 홍희 역, 《중국탈의 역사》, 동문선, 2007, p.17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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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가죽을 뒤집어쓴 것은 역귀를 놀라게 하려는 것으로 지금의 기두와 같다. 기두(魌頭)는 가두와 같은 말이다. ... 역귀를 몰아내는 데 기두를 쓴다."<ref>위의 책, p.위의 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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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는 상고시대 [[모모]](嫫母)<ref> 중국 4대 추녀 중 하나. 5천 년 전 황제(黃帝) 시대에, 황제의 4번째 아내였다. 그 외모는 못생겼지만, 현명하고 성품이 온화해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그녀의 외모로 황제의 악귀를 쫓아내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ref> 때부터 생겨난 관직이다. [[황제]](黃帝)는 모모에게 황제를 보호할 것을 명령했고, 방상씨로 책봉했다. 그녀의 외모를 이용해 악귀를 쫓아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기]](史記)》에서는, 방상씨를 "무서운 외모"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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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의 사목(四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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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의 황금사목(黃金四目)은 일종의 분장 형식이지만, 농후한 주술의식 또한 함축하고 있다. 눈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다. 민간에서 눈은 광명의 상징이자 사람의 생명과 영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영웅과 신들의 '신목(神目)'은 더욱 신비하고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어둠 속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귀매(鬼魅)를 식별하고 요사함을 몰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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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화 중의 영웅과 신들은 눈의 수가 인간보다 많았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그들의 강대하고 특별한 힘을 표현하려 하였다. 예를 들면 영관(靈官)﹒이랑(二郎)﹒산왕(山王)﹒뇌신(雷神)은 삼목이고, 치우(蚩尤)﹒창힐(倉頡)은 사목이며, 순임금은 중동(重瞳)으로 또한 사목이고, 황제는 사면(四面)으로 팔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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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 활동을 주지하는 방상씨 또한 사방의 역려귀괴(疫癘鬼怪)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그 눈의 수가 일반인의 배가 되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속학의 각도에서 보면 방상씨가 쓰고 있는 '사목' 탈은 눈 숭배에 대한 일종의 표현이다.<ref> 위의 책, p.176-17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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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와 관련된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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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 형체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신의 모습을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 그려왔다. 그 일례로, 방상씨의 가면을 쓴 모습을 빗대어 만든 글자들이 있는데,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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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鬼]]([[파일:갑골문1.png|15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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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귀(鬼)의 갑골문은, 큰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을 보여준다.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크고 요상한 가면을 쓴 방상씨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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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畏]]([[파일:갑골문2.png|20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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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울 외(畏)의 갑골문은 위의 큰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 손에 무기도 들고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전해지는 방상씨의 외관에, 가면과 창﹒방패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또한 방상씨의 모습에서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는 의미로 확대된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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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파일:갑골문3.png|20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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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 이(異)의 갑골문은 가면을 쓰고 춤추듯 두 손을 휘두르고 있는 귀신을 보여준다. 이는 곧 방상씨가 무술행위를 거행할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귀신과 요괴의 악 기운을 쫓아내기 위해 더 흉악하고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모양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또한 무당의 모습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한', '다른', '경이로운'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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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驅傩) 의식<ref>위의 책, p.165-16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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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로는 '대나(大傩)'라 불리며, '구나(驅傩)' 혹은 '나제(傩祭)'라고 불리는 현상은, 중국 고대부터 유전된 '탈을 쓰고 굿을 하는' 문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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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傩)'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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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설문해자에서는 '나(傩)'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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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에 절도가 있다. 인(人)변을 따르고, 난(難)에서 소리를 취하였다."''_《[[설문]](說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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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단옥재의 주에서는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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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에 절도가 있다는 것이 이 글자의 본의이다. 역병을 쫓아낸다는 글자는 본래 난(難)으로 쓰고 있으며, 가차되어 '나'가 되면서 역병을 쫓아낸다는 글자가 되고, '나(傩)'의 본의가 없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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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지만, 《중국탈의 역사》 단행본에서는 아래와 같은 주장을 채택하였다. '나'의 기원이 황제 씨족의 곰 토템 숭배에 있다는 주장이다. 최초의 '나'는 본래 곰 씨족의 토템 춤이었지만, 후대에는 귀신을 쫓는 목적의 일반적인 춤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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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 활동에 관한 기록<ref>위의 책, p.16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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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전욱씨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죽어서 모두 역귀가 되었다. 하나는 강수(江水)에 살면서 익사귀가 되었고, 하나는 약수(若水)강에 살면서 망양역귀(罔兩魊鬼)가 되었으며, 하나는 궁실의 틈난 구석에 살면서 어린 아이를 잘 놀래키는 작은 귀신이 되었다. 이리하여 한 해의 12월이 되면 제사를 맡은 관리에게 명하여 철에 따라 '나'를 하고 집안을 수색하여 역귀를 쫓아내었다."''_《[[고금사류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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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周官)은 한해를 마치면 방상씨에게 명하여 여러 관리를 거느리고 집안을 뒤져 역귀를 몰아내게 하였으니 이것이 '구나'의 시작이다."''_《[[사물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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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춘에 '국나'를 행하게 하고, 아홉 문에 제물을 내걸고 재난을 막아 봄 기운을 마치도록 하였다. 중추에는 천자가 '나'를 행하여 가을의 기운이 통달하도록 하였다. 계동에는 관계관에게 명하여 '대나'를 행하게 하고 문 곁에 제물을 내걸며, 흙으로 만든 소를 내보내어 추운 기운을 내보낸다."''_《[[예기]]﹒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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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몽은 그 세시를 파악하여 천지의 회합을 살피고 음양의 기운을 판별한다. 일월성신으로 육몽의 길흉을 점친다. 첫째는 정몽(正夢)이고, 둘째는 악몽(噩夢), 셋째는 사몽(思夢), 넷째는 오몽(寤夢), 다섯째는 희몽(喜夢)이고, 여섯째는 구몽(懼夢)이다. 계동에는 왕몽을 초빙하고 길몽을 왕에게 바치면 왕은 절을 하고 이를 받는다. 이에 사방에 사맹(舍萌)을 하여 악몽을 보낸다. 이어서 마침내 '나'를 시작하도록 명하며 역귀를 몰아내도록 한다."''_《주례﹒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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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구나'에 대한 기록은 견해가 다양하다. 그 기원, 시작한 시기, 생겨난 원인 등이 각기 다르게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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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푸광은 이를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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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는 고대에 아주 성행했던 일종의 세시 무술 의식이다. 이는 역귀를 쫓아내고 복을 기원하며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 기원은 원시 사회 말기부터 이어져 왔고, 상주에 이르러 점차 고정된 제도로 형성되었다. 주대에는 '구나'를 '예'의 범위에 넣어 매년마다 정기적으로 성대한 '나제'를 거행하였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후가 바뀌고 음기와 양기가 교체되는 시기라 여겨진 계춘﹒중추﹒계동이 그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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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춘, 중추 때 시행되는 의식은 천자와 대신, 귀족만이 참가할 수 있었고, 계동 때의 의식은 일반 백성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나'는 성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개인의 불상스러운 화나, 상사(喪事)를 당했을 때도 간소하게 거행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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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향당》에 따르면, 공자가 마을 사람들이 '나'를 행하는 광경을 마주한 기록이 있다. 공자는 조복을 차려 입고 공경하게 섬돌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상고 시기에 '구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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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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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방상씨.jpg|300픽셀|가운데|출처:한국전통지식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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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5~6세기 경 장례와 구나의식(驅儺儀式), 중국 사신 등의 영접에도 악귀를 쫓는 뜻으로 사용되었다.<ref>오임숙, 「葬禮놀이 硏究」,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p.5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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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그날 방상씨가 가면을 썼는데 황금눈이 4개다(期日方相氏着假面黃金四目)"|􏰂『동국문헌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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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는 장례 행렬의 맨 앞에서 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시신을 묻는 곳인 광중에 도착해서는 네 귀퉁이를 찔러 악귀를 쫓고, 감시 엄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장례에서 사용한 탈은 무덤 근처에 묻거나 태워버리고, 장례식마다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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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의 탈은 나무, 종이, 짚, 곰의 가죽 등이 사용되었다. 나무로 된 방상씨는 조정이나 규모가 있는 사대부가에서 썼고, 종이로 된 것은 양반층이,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은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였다.<ref>이태랑, 「전통탈의 조형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현대탈 디자인 연구 - 현대탈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7, p.1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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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휘쟁이 춤이라고 하여, 출상(出喪) 시에 죄인의 목을 치는 휘겡이가 칼을 돌리면서 춤을 추고 잡귀를 몰아내며 시신(屍身)을 장지(葬地)까지 무사히 호송하는 의례가 있다. 이러한 춤을 상여 앞에서 탈을 쓰고 칼을 들고 나아가며, 잡귀 등의 범접을 막아내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이는 방상씨와 비슷한 형식을 띄고 있다. 방상씨는 같은 형식으로 일정한 형태에 의해 추는 반면, 휘쟁이 춤은 주변의 환경과 놓여진 상황에 따라 즉흥적인 동작으로 추어진다는 점이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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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씨가 가장 크게 동원된 사례로 마지막 국상(國喪)인 고종황제의 장례식이 있다. 최고의 방상시 가면 유물로는 호우총(壺杅塚)에서 출토된 사목(四目)의 목심철면(木心漆面)을 꼽으며 중요 민속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ref>앞의 논문, p.5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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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중매체 속의 방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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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군도포스터.jpg|300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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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에서 방상씨의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인물이 보인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단행본===
 
===단행본===
 
# 구푸광, 홍희 역, 《중국탈의 역사》, 동문선, 2007, p.165-188.
 
# 구푸광, 홍희 역, 《중국탈의 역사》, 동문선, 2007, p.165-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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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웅, 《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주)지식산업사, 1993, p.470.
  
 
===학술논문===
 
===학술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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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형화, 「儺禮와 儺禮舞考 :儺禮 無形成 過程을 中心으로」,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76, p.24-26.
 
# 오임숙, 「葬禮놀이 硏究」,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p.53-57.
 
# 오임숙, 「葬禮놀이 硏究」,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p.53-57.
 
# 이태랑, 「전통탈의 조형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현대탈 디자인 연구 - 현대탈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7, p.16-18.
 
# 이태랑, 「전통탈의 조형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현대탈 디자인 연구 - 현대탈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7, p.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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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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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度百科, "方相氏", https://baike.baidu.com/item/方相氏/9882969?fr=aladdin#5, (2019.12.23.).
  
 
==각주==
 
==각주==
  
 
[[분류: 중국문자]]
 
[[분류: 중국문자]]

2019년 12월 23일 (월) 16:53 기준 최신판

출처:https://baike.baidu.com/item/方相氏/9882969?fr=aladdin#5

개요

放相氏(fāng xiāng shì); 방상씨는 고대 민간 신앙의 신이다. 중국 전통 사회에서 악귀를 몰아내는 직관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역병을 물리치고 액막이를 하는 신[驱疫避邪的神]을 의미한다. 방상씨는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掌蒙熊皮], 황금빛의 네 눈에[黃金四目], 검은 저고리와 붉은 치마[玄衣朱裳]를 입고, 창과 방패를 들고서 나라의 역병을 쫓아낸다. 궁정에서 방상씨가 역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중국어로 ‘대나(大傩)’라고 한다. 의식은 계춘(季春, 늦은 봄), 중추(仲秋,가을의 두 번째 달), 그리고 계동(季冬, 음력 섣달), 세 번에 걸쳐 매년 이루어진다. 제야[除夕夜]에 거행되는 역귀를 쫓아내는 의식이 가장 성대하다.[1]

관리로서의 방상씨

방상씨는 관명 중 하나이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하관(夏官) 사마(司馬) 아래에 방상씨라는 관직이 있었고, 그 외모가 공포스럽다고 전해진다.

《주례(周禮)﹒하관(夏官)》에는 방상씨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방상씨의 외적 형상을 설명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자료이다.

"방상씨는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황금빛을 띤 네 눈에 검은 저고리 붉은 치마를 입고 창을 들고 방패를 가지고서 백예(百隷)를 거느리고 철에 따라 '나'를 행하면서 집안을 뒤져 역귀를 몰아내었다."[2]
"곰가죽을 뒤집어쓴 것은 역귀를 놀라게 하려는 것으로 지금의 기두와 같다. 기두(魌頭)는 가두와 같은 말이다. ... 역귀를 몰아내는 데 기두를 쓴다."[3]

방상씨는 상고시대 모모(嫫母)[4] 때부터 생겨난 관직이다. 황제(黃帝)는 모모에게 황제를 보호할 것을 명령했고, 방상씨로 책봉했다. 그녀의 외모를 이용해 악귀를 쫓아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기(史記)》에서는, 방상씨를 "무서운 외모"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방상씨의 사목(四目)

방상씨의 황금사목(黃金四目)은 일종의 분장 형식이지만, 농후한 주술의식 또한 함축하고 있다. 눈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다. 민간에서 눈은 광명의 상징이자 사람의 생명과 영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영웅과 신들의 '신목(神目)'은 더욱 신비하고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어둠 속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귀매(鬼魅)를 식별하고 요사함을 몰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고대 신화 중의 영웅과 신들은 눈의 수가 인간보다 많았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그들의 강대하고 특별한 힘을 표현하려 하였다. 예를 들면 영관(靈官)﹒이랑(二郎)﹒산왕(山王)﹒뇌신(雷神)은 삼목이고, 치우(蚩尤)﹒창힐(倉頡)은 사목이며, 순임금은 중동(重瞳)으로 또한 사목이고, 황제는 사면(四面)으로 팔목이다.

'나제' 활동을 주지하는 방상씨 또한 사방의 역려귀괴(疫癘鬼怪)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그 눈의 수가 일반인의 배가 되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속학의 각도에서 보면 방상씨가 쓰고 있는 '사목' 탈은 눈 숭배에 대한 일종의 표현이다.[5]

방상씨와 관련된 한자

고대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 형체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신의 모습을 다른 무언가에 빗대어 그려왔다. 그 일례로, 방상씨의 가면을 쓴 모습을 빗대어 만든 글자들이 있는데, 아래와 같다.

귀신 귀(鬼)의 갑골문은, 큰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을 보여준다.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크고 요상한 가면을 쓴 방상씨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생각된다.
두려울 외(畏)의 갑골문은 위의 큰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 손에 무기도 들고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전해지는 방상씨의 외관에, 가면과 창﹒방패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또한 방상씨의 모습에서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는 의미로 확대된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다를 이(異)의 갑골문은 가면을 쓰고 춤추듯 두 손을 휘두르고 있는 귀신을 보여준다. 이는 곧 방상씨가 무술행위를 거행할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귀신과 요괴의 악 기운을 쫓아내기 위해 더 흉악하고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모양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또한 무당의 모습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한', '다른', '경이로운'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구나(驅傩) 의식[6]

중국어로는 '대나(大傩)'라 불리며, '구나(驅傩)' 혹은 '나제(傩祭)'라고 불리는 현상은, 중국 고대부터 유전된 '탈을 쓰고 굿을 하는' 문화 현상이다.

'나(傩)'란?

우선 설문해자에서는 '나(傩)'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행동에 절도가 있다. 인(人)변을 따르고, 난(難)에서 소리를 취하였다."_《설문(說文)》

또한 단옥재의 주에서는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행동에 절도가 있다는 것이 이 글자의 본의이다. 역병을 쫓아낸다는 글자는 본래 난(難)으로 쓰고 있으며, 가차되어 '나'가 되면서 역병을 쫓아낸다는 글자가 되고, '나(傩)'의 본의가 없어지게 되었다."

'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지만, 《중국탈의 역사》 단행본에서는 아래와 같은 주장을 채택하였다. '나'의 기원이 황제 씨족의 곰 토템 숭배에 있다는 주장이다. 최초의 '나'는 본래 곰 씨족의 토템 춤이었지만, 후대에는 귀신을 쫓는 목적의 일반적인 춤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구나' 활동에 관한 기록[7]

"옛날 전욱씨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죽어서 모두 역귀가 되었다. 하나는 강수(江水)에 살면서 익사귀가 되었고, 하나는 약수(若水)강에 살면서 망양역귀(罔兩魊鬼)가 되었으며, 하나는 궁실의 틈난 구석에 살면서 어린 아이를 잘 놀래키는 작은 귀신이 되었다. 이리하여 한 해의 12월이 되면 제사를 맡은 관리에게 명하여 철에 따라 '나'를 하고 집안을 수색하여 역귀를 쫓아내었다."_《고금사류전서
"주관(周官)은 한해를 마치면 방상씨에게 명하여 여러 관리를 거느리고 집안을 뒤져 역귀를 몰아내게 하였으니 이것이 '구나'의 시작이다."_《사물기원
"계춘에 '국나'를 행하게 하고, 아홉 문에 제물을 내걸고 재난을 막아 봄 기운을 마치도록 하였다. 중추에는 천자가 '나'를 행하여 가을의 기운이 통달하도록 하였다. 계동에는 관계관에게 명하여 '대나'를 행하게 하고 문 곁에 제물을 내걸며, 흙으로 만든 소를 내보내어 추운 기운을 내보낸다."_《예기﹒월령》
"점몽은 그 세시를 파악하여 천지의 회합을 살피고 음양의 기운을 판별한다. 일월성신으로 육몽의 길흉을 점친다. 첫째는 정몽(正夢)이고, 둘째는 악몽(噩夢), 셋째는 사몽(思夢), 넷째는 오몽(寤夢), 다섯째는 희몽(喜夢)이고, 여섯째는 구몽(懼夢)이다. 계동에는 왕몽을 초빙하고 길몽을 왕에게 바치면 왕은 절을 하고 이를 받는다. 이에 사방에 사맹(舍萌)을 하여 악몽을 보낸다. 이어서 마침내 '나'를 시작하도록 명하며 역귀를 몰아내도록 한다."_《주례﹒점몽》

이처럼 '구나'에 대한 기록은 견해가 다양하다. 그 기원, 시작한 시기, 생겨난 원인 등이 각기 다르게 명시되어 있다.

구푸광은 이를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구나'는 고대에 아주 성행했던 일종의 세시 무술 의식이다. 이는 역귀를 쫓아내고 복을 기원하며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 기원은 원시 사회 말기부터 이어져 왔고, 상주에 이르러 점차 고정된 제도로 형성되었다. 주대에는 '구나'를 '예'의 범위에 넣어 매년마다 정기적으로 성대한 '나제'를 거행하였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후가 바뀌고 음기와 양기가 교체되는 시기라 여겨진 계춘﹒중추﹒계동이 그 시기이다.

계춘, 중추 때 시행되는 의식은 천자와 대신, 귀족만이 참가할 수 있었고, 계동 때의 의식은 일반 백성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나'는 성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개인의 불상스러운 화나, 상사(喪事)를 당했을 때도 간소하게 거행되기도 하였다.

논어﹒향당》에 따르면, 공자가 마을 사람들이 '나'를 행하는 광경을 마주한 기록이 있다. 공자는 조복을 차려 입고 공경하게 섬돌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상고 시기에 '구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방상씨

출처:한국전통지식포탈


방상씨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5~6세기 경 장례와 구나의식(驅儺儀式), 중국 사신 등의 영접에도 악귀를 쫓는 뜻으로 사용되었다.[8]

"그날 방상씨가 가면을 썼는데 황금눈이 4개다(期日方相氏着假面黃金四目)"

 
— 􏰂『동국문헌비고』

􏰃

방상씨는 장례 행렬의 맨 앞에서 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시신을 묻는 곳인 광중에 도착해서는 네 귀퉁이를 찔러 악귀를 쫓고, 감시 엄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장례에서 사용한 탈은 무덤 근처에 묻거나 태워버리고, 장례식마다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방상씨의 탈은 나무, 종이, 짚, 곰의 가죽 등이 사용되었다. 나무로 된 방상씨는 조정이나 규모가 있는 사대부가에서 썼고, 종이로 된 것은 양반층이,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은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였다.[9]

한국에서는 휘쟁이 춤이라고 하여, 출상(出喪) 시에 죄인의 목을 치는 휘겡이가 칼을 돌리면서 춤을 추고 잡귀를 몰아내며 시신(屍身)을 장지(葬地)까지 무사히 호송하는 의례가 있다. 이러한 춤을 상여 앞에서 탈을 쓰고 칼을 들고 나아가며, 잡귀 등의 범접을 막아내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이는 방상씨와 비슷한 형식을 띄고 있다. 방상씨는 같은 형식으로 일정한 형태에 의해 추는 반면, 휘쟁이 춤은 주변의 환경과 놓여진 상황에 따라 즉흥적인 동작으로 추어진다는 점이 차이이다.

방상씨가 가장 크게 동원된 사례로 마지막 국상(國喪)인 고종황제의 장례식이 있다. 최고의 방상시 가면 유물로는 호우총(壺杅塚)에서 출토된 사목(四目)의 목심철면(木心漆面)을 꼽으며 중요 민속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10]

현대 대중매체 속의 방상씨

군도포스터.jpg

↑ 2014년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에서 방상씨의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인물이 보인다.

참고문헌

단행본

  1. 구푸광, 홍희 역, 《중국탈의 역사》, 동문선, 2007, p.165-188.
  2. 허진웅, 《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주)지식산업사, 1993, p.470.

학술논문

  1. 백형화, 「儺禮와 儺禮舞考 :儺禮 無形成 過程을 中心으로」,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76, p.24-26.
  2. 오임숙, 「葬禮놀이 硏究」,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p.53-57.
  3. 이태랑, 「전통탈의 조형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현대탈 디자인 연구 - 현대탈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7, p.16-18.

인터넷 자료

  1. 百度百科, "方相氏", https://baike.baidu.com/item/方相氏/9882969?fr=aladdin#5, (2019.12.23.).

각주

  1. 百度百科, "方相氏", https://baike.baidu.com/item/方相氏/9882969?fr=aladdin#5, (2019.12.23.).
  2. 구푸광, 홍희 역, 《중국탈의 역사》, 동문선, 2007, p.171.
  3. 위의 책, p.위의 페이지.
  4. 중국 4대 추녀 중 하나. 5천 년 전 황제(黃帝) 시대에, 황제의 4번째 아내였다. 그 외모는 못생겼지만, 현명하고 성품이 온화해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그녀의 외모로 황제의 악귀를 쫓아내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5. 위의 책, p.176-177.
  6. 위의 책, p.165-166.
  7. 위의 책, p.168.
  8. 오임숙, 「葬禮놀이 硏究」,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p.53.
  9. 이태랑, 「전통탈의 조형적인 모티브를 활용한 현대탈 디자인 연구 - 현대탈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7, p.18.
  10. 앞의 논문,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