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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언덕 부.png

阜는 토산, 구릉을 가리킨다. 阜는 원래 상고시대 인류의 주거지인 혈거(穴居)를 가리켰는데, 동굴의 벽에 매달려 있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계단을 형상한 것이다. 또한 혈거는 반드시 토양층이 두꺼운 고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阜는 작은 언덕이나 작은 산을 가리키게 되었다. 갑골문금문의 모습은 세로로 세워진 계단의 형상이지만 가로로 보면 산의 형상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갑골문 阜자는 험한 비탈길의 디딤대나 계단을 형상한 것이며, 산의 형체가 높고 크서 디딤대나 계단이 있어야만 비로소 오르고 내려가기 편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전서를 보면 阜자가 상형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높고 큰 토산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높고 크며 비대하다는 뜻이 되었고, 또 그 뜻이 파생되어 많다는 뜻이 되었으며, 특별히 재물이 성대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文化

阜의 위 부분을 『설문해자』에서는 堆와 같은 발음으로 읽고 堆土의 형태라고 풀이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거의 모두 그 해석을 따랐는데, 이는 아마도 이것을 땅덩이의 상형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로, 阜의 위 부분은 퇴토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고기 조각을 나타낸다는 주장이 있다. 군대가 출진할 때는 사당이나 군사에서 제사를 지내 전승을 기원하였고, 그 뒤 제사에 쓴 고기 조각을 받들면서 군대가 전진하였다. 이때 제사 때 사용된 제육을 상형한 글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阜는 사실 퇴토와 관계있는 글자가 아니라, 신의 사다리 앞에서 벌어지는 제의적 행위를 문자로 형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일단 제의적 의미를 지닌 글자로 파악한 뒤, 지금의 뜻이 어떻게 파생되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1] 阜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글자가 바로 '곡부(曲阜)'이다. 곡부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일대의 땅 이름으로 옛날 노나라의 도읍이었다. 곡부는 중국의 보수적인 문화의 중심지로써 제나라의 개방적인 문화와 더불어 중국 전통 문화의 두 축을 형성한다. 『사기(史記)』의 기록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주나라가 왕조를 세우고 나서 개국 공신인 주공(周公)과 여상(呂尙)에게 각각 노나라와 제나라를 봉지로 주었다. 주공이 아들인 백금을 노나라로 보냈더니 3년이 지나서야 돌아와 국정을 보고하였다. 늦은 이유를 물으니 "그곳의 풍속과 규범을 뜯어고치고 삼년상을 치르게 하느라고 늦었다."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제나라로 간 여상은 6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군신의 예를 간소화하고 그곳 풍속을 좇아 정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즉 여상은 제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잠시 와 있는 것일 뿐 이 일을 마치면 다시 서쪽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치에 임한 반면, 백금은 노나라를 자손 대대로 살 땅으로 여기고 계획하였다. 그러다 보니 곡부(노나라)의 문화는 자연히 보수적이게 되었다.[2]

  1. ≪漢字 백가지 이야기≫, 시라가와 시즈카, p.178
  2. ≪욕망하는 천자문-문자 속에 숨은 권력, 천자문 다시 읽기≫, 김근, pp.383-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