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사회(和谐社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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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화사회(和谐社會)는 음독하면 화해사회이나 ‘어울리다, 조화롭다, 화목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후진타오 정부의 조화사회가 가지는 정책적 함의 역시 다양한 모순의 공존, 어울림이기 때문에 조화사회로 번역한다. 이는 중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국공산당의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 지침으로, 그 핵심은 중국발전의 초점을 경제성장에서 사회적 균형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조화사회란 2004년9월19일 중국공산당 제16차 중앙위원회(中央委员会) 제4차 전체회의에서 정식 제출된 ‘구건사회주의화해사회(构建社会主义和谐社会)’의 개념으로 2005년부터 중국공산당은 조화사회를 정책 집행의 전략적 임무로 삼고 화해(和谐)의 이념이 중국만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민주법치, 공평정의, 성신우애(诚信友爱), 충만활력(充满活力), 안정유서(安定有序),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1]

조화사회론 내용

후진타오 정부의 정책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되는데, 2020년까지 소강사회의 건설과 조화사회의 건설이었다. 농민저항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와 비슷한 시점에 취임한 후진타오는 이러한 문제점과 당면성을 인식하고, 조화사회 확립을 위한 목표 아래 민생안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조화사회는 중국발전을 위한 하나의 모델로서 중국이 당면한 경제, 환경,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종합적 처방이다. 조화사회 건설은 빈부격차, 도농격차를 해소해 민심을 모으고 강대한 중국을 만들기 위한 운동으로, 이를 통해 ‘정부와 국민’,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

2006년 10월 8일~11일까지 진행된 중국공산당 16기 6중전회에서 ‘사회주의 조화사회건설을 위한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관한 중공중앙의 결정’을 결의 했다. 이 결정에서 조화사회는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 속성임을 밝히고, ‘민주와 법치, 공평정의, 성실우애, 충만활력, 안정질서, 사랑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라는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의 6개 지도사상을 제시했다. 또한 조화로운 사회 건설과 관련된 2020년까지의 목표와 주요임무를 각각 9가지 제시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주의 법제건설과 법치를 통한 인민의 권익 보장. 둘째, 신농촌건설을 통한 도농 지역격차 해소, 지역균형발전, 수익분배 구조 개선으로 가정소득증진을 통한 인민생활 향상. 셋째, 취업확대와 사회보장체계의 확립. 넷째, 공공 서비스형 정부관리 건설. 다섯째, 국민의 사상도덕과 문화소질제고로 조화로운 인간관계 건설. 여섯째, 전사회의 활력창조로 혁신형 국가 건설. 일곱째, 사회관리체제 개선과 사회질서 향상. 여덟째, 효율적 자원활용으로 생태환경 개선. 아홉째, 전체인구의 소질 제고이다.

개념의 근원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은 중국공산당이 달성해야 할 목표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면서 그 개념의 근원을 『논어』, 『묵자』, 『맹자』, 『대동서』등 중국의 고전에서 찾고 있다. 중국의 고전에서 나오는 조화사회와 관련된 서술들은 매우 추상적인데, 중국공산당은 이런 추상적인 개념을 그대로 전제하면서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을 확립하기 위해 추진해야 할 임무를 제시했다.

중국 유가의 전통적 조화사상

화(和)는 유가원리 전부가 응축된 최후의 글자로 ‘상응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해(谐)는 ‘고르게 하다’는 의미가 있고 화(和)의 단계에서 진척된 단계로 질서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화해(和谐)는 화합한 후 일정한 규칙에 의해 정리된 상태를 말한다.

중국 고대 조화사상은 화이부동의 ‘조화롭되 동화되지 않는다’는 이념이다.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가지는 ‘화위귀(和为贵)’의 화합(和合)사상은 수천 년 동안 중국사회발전의 사상적 동력이었으며, 후진타오가 제시한 조화세계이념의 사상적 원천이다. 유가의 공자는 화합사상에 대해 화(和)를 대인, 대물 관계에서 갖는 중요 행위의 기준으로 보고, ‘예지용(礼之用:예를 활용하는 데는 서로의 어울림이 소중하다는 뜻)’, ‘화위귀’를 제시하여 예(礼)의 작용으로 삼았고, 화목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공자는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 군자는 조화롭되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나 조화롭지 못하다는 뜻)라는 명제를 제시하였고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는 뜻)도 제시하였다. 조화가 반드시 동화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동화되는 것은 조화롭지 못할 수 있음을, 그리고 자신을 우대하려면 타인을 더 우대해야 하는 도리 등을 명백히 논술하였다.

중국의 지도자가 행한 조화로운 세계, 조화로운 지역, 조화로운 주변 등의 이념에 대한 논술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그 핵심은 바로 화위귀를 제창하여 상이한 문화가 평화, 공존하고 공생하며, 화이부동의 관점에서 문제를 관찰, 처리하여 타국을 우대하고 서로 달라도 다투지 않으며, 세계 다원문화가 서로 보충하고 귀감이 되어 상호 성장하는 것을 의도한다. 이렇게 화위귀 사상이 중용사상 등과 같이 중국전통사상의 기원이 될 수 있음은 물론 조화사회론 이념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출현 배경

후진타오 정부는 등장 이후 세 가지 슬로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인위본’, ‘화이부동’, ‘화평굴기’이다. 이 3가지 전략의 요지는 내적 발전과 외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발전 수준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과 이견들로부터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후진타오 정부는 학계와 국내외 여론을 수렴하여 방향 수정 및 이론 개정에 착수해 ‘조화사회’를 만들고 이를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시켰다.

사회적 관점

1919년 등소평개혁개방이후로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경제성장의 결과 국익이 증대되고 중국 인민의 전반적인 삶이 풍요로워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한 중국은 많은 빈부격차, 노동문제, 양극화 등의 사회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보다 앞서 시장경제 제도를 채택한 미국과 영국 등의 서구 열강등은 위와 같은 시장경제 제도가 갖고있는 모순을 외부의 식민국가로 이전시키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식민국가가 없는 중국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때, 중국이 선택한 방법은 호구제도를 통한 도농이원구조 방법이었다.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기에 많은 수의 농민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했고 이러한 농민공들은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었다. 농민공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통해서 중국 정부는 내부 모순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농민공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1958년 호구등기조례의 규정에 의해 직업, 주거, 복지혜택 등에서 도시 호구권을 가진 도시주민과 다른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농민공의 중요한 사회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도농이원구조는 날로 심각해 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큰 위협이 되었고 후진타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화해사회를 내세웠다.

문화적 관점

문화적 관점에서 본 후진타오 조화사회론의 발달을 촉진시킨 요소는 유가 조화사회 사상의 특징들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자기 자신이 타인에 의해 통제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공업사회에 기초한 현대조화사회는 발전기간이 짧은 관계로 아직 완벽한 민주질서 구축의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농업사회에 기초한 전통조화사회의 수준에 머물고 있거나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상태이며, 중국사회에서는 여전히 계급, 질서적 등급질서의 추구현상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사회, 문화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직적이고 질서적인 조화사회론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문화의 이중성도 후진타오 조화사회론의 존재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의 역사가 분(分)과 합(合)의 반복인 것처럼, 대립적인 형태보다 조화적인 형태를 오랜 기간 지속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중성에는 귀족과 평민, 빈과 부, 한족과 이민족, 유가도가, 개인과 집단 등의 양면적 구도가 포함된다. 중국의 오래된 역사와 광활한 영토 위에서 문화의 이중성은 다른 나라보다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중국 문화 내에서 조화점과 균형점 모색이 대두되고, 이러한 점을 상호 타협하고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중국 문화의 이중성은 조화사회론의 등장을 촉진시키는 긍정적 작용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정책적 적용

후진타오 정부는 계서적 정리를 통한 조화를 국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보았다. 국내문제에서 조화는 다양한 수준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의 문제이고 그 해답은 민생, 민권, 민주의 개념을 포함한 이인위본에 있는 것이었다. 2007년 양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12가지 민생문제가 제기되었다.

후진타오 정부는 의료위생 문제에 대해서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약제구입과 진료의 어려움, 의료비 부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약제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고 했다. 식품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생산가공, 유통 및 소비 등의 전체적인 정비가 요구되며 국가품질검사총국은 가짜제조나 판매, 비식품원료를 사용해 생산가공하는 위법행위를 엄중히 감시 감독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서 현재 중국은 경제발전과 환경보호의 모순이 극화되었다고 판단하고 정부책임강화를 통해 6개월마다 각지의 주요환경오염방출정황을 공포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외에도 고용, 사회보장, 교육비, 도시민의 이주 등을 포함한 총 12가지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조치를 시작했다.

계서적 질서에 따라 정리할 수 없는 국제적인 문제는 화이부동의 원리에서 해법을 찾았다. 남과 어울리면서도 자기 입장을 지킨다는 뜻에서 인간 간의 문제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유효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정책적 발현은 2002년 장쩌민의 미국방문, 2003년 12월 원자바오총리의 미국방문연설, 2007년 후진타오와 푸틴 간에 서명된 중ㆍ러담화문 등에서 화이부동을 언급하며 이를 적용시켰다.

또한 조화사회론은 국내문제의 계서적인 정리와 국제문제의 다양성 화합을 포함하기 때문에 중국의 궁극적인 국가목표인 굴기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후진타오 정부 초기에 언급되었던 화평굴기는 외부반발에 의해 평화발전의 길로 명칭이 변환되었지만 내용은 동일했다. 조화사회론을 화평굴기에 적용하여 상생의 논리로 내세우면서 중국의 굴기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에게 유리하며 세계정치ㆍ경제 발전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평가

2012년 9월 2일 중국공산당 당교학교에서 발행한 <학습시보(学习时报)>에서는 후진타오 집권 10년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비해 경제 구조 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지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했으며, 소득분배와 농민공에 대한 호적제도 개혁이 미흡했고, 인구 정책을 효과적으로 개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외에도 교육정책, 환경문제 등의 부정적 평가와 정치개혁과 민주화에 대한 부분에서 인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인민들의 의식구조는 점차 서구화되어 가고 있지만 후진타오가 강조한 민주, 자유 등의 실질적인 진행은 부족했던 것이다. 또한 인민들의 불만에 대해서 정부는 오히려 인민들의 입을 막고 귀를 막는 행보를 보였다.

被和谐(bèihéxié)

2003년 4월 중국에서 사스가 발생했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숨겼다. 광저우에 있는 진보성향의 남방도시보(南方都市报)가 이를 폭로했고 이 사실은 인터넷을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이후 관료들의 부패와 탄광사고 등을 고발하는 기사와 공산당을 비판하는 기사도 언론에 등장했다. 2004년 1월 정부가 남방도시보 수사를 시작하면서 언론 통제가 시작됐고 이때부터 중국의 언론 검열 및 탄압이 시작되었다. 중국은 체제 안정을 이유로 고발 기사나 문제 기고문을 싣는 언론 매체에 정간 조치를 했으며, 해당 언론사 간부들을 해임했다. 이러한 언론 탄압은 후진타오 정부 이후 점차 강도를 높였다.

언론 탄압과 함께 인터넷 검열과 통제도 진행되었다. 중국 내에서 모든 포털은 관영 언론에서 제공받은 뉴스나 콘텐츠만을 게재해야 하며 외신의 인용은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게시판이나 채팅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는 이용자들이 국가에서 승인된 내용만을 다루도록 감독하도록 유도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면 정부에 의해 삭제될 수 있다. ‘만리장성 방화벽(The Great Firewall)’으로 불리는 시스템으로 정부 의도와 맞지 않는 모든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2005년 4월, 중국 상하이를 중심으로 항저우, 텐진 등지에서 반일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총리의 신사참배로 촉발된 이 반일운동은 한 네티즌이 5월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날’로 정하자는 제안서가 인터넷에 뜬 이후 젊은 층의 호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하면서 인터넷이 가져올 체제 위협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후진타오는 2011년 “정보인터넷망 관리를 한 단계 강화하고 가상사회의 관리수준을 높이면서 인터넷 여론 지도기구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터넷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같은 날 중국 ‘웨이보’에 일당 독재를 끝내기 위해 정치 개혁, 민주주의, 자유를 요구하는 등의 시위구호가 담긴 ‘자스민 혁명’을 일으키자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포함된 글이 확산되었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으로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 민주화 운동가 등 100여명을 체포하거나 가택 연금한 것으로 전해졌다.

웨이보(微博)와 바이두(百度) 등 포털사이트에서는 영어 ‘자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과 이 단어의 중국어인 ‘모리화 혁명(茉莉花革命)‘이나 ‘자스민’, ‘모리화’, ‘혁명’ 등을 검색하면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1989천안문사건, 달라이 라마, 파룬궁, 대만 독립 등의 민감한 단어와 중국 최고지도부의 명칭을 검색하는 경우 모두 검열의 대상이 된다. 이외에도 해외에 서버를 둔 SNS프로그램인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의 사용도 금지되어 있다.

언론 탄압, 인터넷 검열 및 통제 등 정부의 행보로 인민들의 불만은 커져갔고,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2011년 중국 인터넷 유행어로 등극한 被和谐(bèihéxié)는 다른 사람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차단당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어, 일반적으로 ‘소멸, 해결되어 삭제되었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었다. 정부가 제시한 금기어를 사용하거나 반정부적인 내용의 글을 온라인 공간에 게재하면 검열에 걸려 삭제 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조소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서로에게 ‘小心被和谐(xiǎoxīnbèihéxié)‘라고 경고하며 체포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또한 온라인에서 ‘和谐’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면 검열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河蟹(털게:héxiè)‘를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나민구, 김미헌, 「중국 정부의 ‘和諧’(조화) 정책에 대한 수사학적 분석」, 『수사학』, 제25집, 한국수사학회, 2016.
신주식, 「조화사회론의 연원(연源), 태동배경 및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유가 조화사회 사상이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한중사회과학연구』, 제21권, 한중사회과학학회, 2011.
이승은, 「‘중국적 통치성’으로 바라본 현대 중국의 ‘사회영역’ 담론 변화」, 『중국과 중국학』, 제31호, 영남대학교 중국연구센터, 2017.
이정태, 「후진타오정부의 "조화사회"」, 『대한정치학회보』, 제15권 제2호, 대한정치학회, 2007.
장영석,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과 사회관리의 유효성」, 『성균차이나브리프』 제5권 제1호, 서울대학교 인구의학연구소, 2017.

주석

  1. [1][네이버 지식백과] 화해사회 [和谐社会, Harmonious Society, Héxié Shèhuì]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도서출판 인포차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