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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연나라는 임금과 신화가 모두 혼란스러우며 조나라에게 수도마저 포위당했습니다. 장군이 피폐해진 요성의 백성을 제나라의 군사들과 맞서게 하는 것은 마치 [[묵적]]의 송나라를 위해 초나라를 막아낸 것과 같습니다. 인육을 먹고 사람의 뼈로 불을 때면서도 병사들이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은 [[손빈]]의 군사와 같을 정도로 장군의 재능은 천하에 드높습니다. 그렇지만 병력과 무기가 온전할 때 연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 같습니다.  <br>
 
  지금 연나라는 임금과 신화가 모두 혼란스러우며 조나라에게 수도마저 포위당했습니다. 장군이 피폐해진 요성의 백성을 제나라의 군사들과 맞서게 하는 것은 마치 [[묵적]]의 송나라를 위해 초나라를 막아낸 것과 같습니다. 인육을 먹고 사람의 뼈로 불을 때면서도 병사들이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은 [[손빈]]의 군사와 같을 정도로 장군의 재능은 천하에 드높습니다. 그렇지만 병력과 무기가 온전할 때 연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 같습니다.  <br>
 
   
 
   
  당신이 온전하게 연나라로 돌아간다면 연나라 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백성들은 부모를 만난 듯 기뻐할 것이고, 당신의 친구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당신의 업적을 밝힐 것입니다. 위로는 고립된 왕을 도와 신하를 통제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위해서 유세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국정을 바르게 하고 풍속을 고친다면 공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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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온전하게 연나라로 돌아간다면 연나라 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백성들은 부모를 만난 듯 기뻐할 것이고, 당신의 친구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당신의 업적을 밝힐 것입니다. 위로는 고립된 왕을 도와 신하를 통제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위해서 유세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국정을 바르게 하고 풍속을 고친다면 공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여론을 등지고 제나라로 가시오. 제나라는 장군에게 땅을 쪼개어서 봉지를 정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제나라와 함께 오랫동안 부귀를 누리며 존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또한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 두 계책은 이름을 드러내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일로 깊이 생각해 보고 한 가지를 택하시오. <br>
 
   
 
   
만약 이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여론을 등지고 제나라로 가시오. 제나라는 장군에게 땅을 쪼개어서 봉지를 정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제나라와 함께 오랫동안 부귀를 누리며 존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또한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 두 계책은 이름을 드러내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일로 깊이 생각해 보고 한 가지를 택하시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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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조그마한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드러낼 수가 없고, 조그마한 부끄러움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관중]]이 제나라 [[환공]]을 쏘아 허리띠 정면에 붙어 있는 장식을 맞춘 것은 반역 행위였고, 공자 규를 버리고 함께 죽지 않은 것은 비겁한 행위였으며, 결국 잡혀서 수갑과 차꼬를 차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행동을 한 자는 세상의 군주가 신하로 쓰기를 원하지 않고, 마을의 사람들도 사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관중이 옥에 갇혀 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욕을 피하지 못하고 노비들 또한 그 이름이 함께 불려 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겠습니까? <br>
 
  나는 ‘조그마한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드러낼 수가 없고, 조그마한 부끄러움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관중]]이 제나라 [[환공]]을 쏘아 허리띠 정면에 붙어 있는 장식을 맞춘 것은 반역 행위였고, 공자 규를 버리고 함께 죽지 않은 것은 비겁한 행위였으며, 결국 잡혀서 수갑과 차꼬를 차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br>
 
 
이러한 세 가지 행동을 한 자는 세상의 군주가 신하로 쓰기를 원하지 않고, 마을의 사람들도 사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관중이 옥에 갇혀 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욕을 피하지 못하고 노비들 또한 그 이름이 함께 불려 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겠습니까? <br>
 
 
   
 
   
 
  그러므로 관중은 다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나라가 위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환공을 도와서 오패의 으뜸으로 만들어, 그 명성이 천하에 달해 이웃 나라까지 비쳤던 것입니다. 또 [[조말]]은 노나라 장군이 되어 세 번 싸워서 세 번 다 졌습니다. 만약 조말이 스스로 목을 베었다면 오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말은 돌아와 노나라 임금과 계책을 꾸몄습니다. 환공이 천하의 제후를 만나는 자리에서 칼 한 자루만을 믿은 채 단상에 올라 환공의 가슴을 겨누었지만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 번 졌던 설욕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br>
 
  그러므로 관중은 다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나라가 위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환공을 도와서 오패의 으뜸으로 만들어, 그 명성이 천하에 달해 이웃 나라까지 비쳤던 것입니다. 또 [[조말]]은 노나라 장군이 되어 세 번 싸워서 세 번 다 졌습니다. 만약 조말이 스스로 목을 베었다면 오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말은 돌아와 노나라 임금과 계책을 꾸몄습니다. 환공이 천하의 제후를 만나는 자리에서 칼 한 자루만을 믿은 채 단상에 올라 환공의 가슴을 겨누었지만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 번 졌던 설욕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br>

2019년 6월 11일 (화) 17:29 판

개요

노중련(鲁仲连)은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노련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략 기원전 345년~205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벼슬에는 좀처럼 뜻이 없었으며 모든 부귀영화를 멀리 하고 세속에 거리를 두었던 선비였다. 그러나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고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알았으며, 한편으로는 기이한 계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뛰어난 책략가이기도 하였다.  

노중련(鲁仲连)

출생 B.C 345 (추정년도)
제(齊)나라
사망 B.C 205 (추정년도)
생존시기 전국시대

주요 사건

조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다

조나라 효성왕 때, 조나라는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진나라 군대에 의해 조나라의 수도 한단이 포위되었으며 조나라 왕은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는 다른 제후들이나 위나라 안희왕도 마찬가지였는데, 안희왕은 조나라를 구하고 싶어 장수 진비를 보냈지만 역시 진나라가 두려워 섣불리 나서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안희왕은 장군 신원연을 한단에 들여 보내어 조나라 평원군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진나라는 제나라 민왕과 세력을 다투며 제왕이라고 칭했지만 후에 제왕 칭호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나라 민왕은 세력이 약해졌고 진나라만이 천하를 누비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한 까닭은 한단을 손에 넣고 싶어서가 아닌 다시 제왕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신을 파견하여 진나라 왕에게 제왕의 칭호를 허락한다면 진나라는 기뻐하면서 한단을 포기하고 군대를 거둘 것입니다.”

평원군이 어떻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노중련은 마침 조나라에 있었다. 노중련은 안희왕이 전한 말을 듣고 평원군에게 신원연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연은 처음에는 만남을 거절했으나 결국 노중련과의 만남을 허락했다. 노중련은 신원연에게 진나라는 예의가 없이 적의 머리를 베는 것만을 좋아하며 노예처럼 백성을 부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진나라 왕이 제왕이 된다면 천하가 그릇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나라와 초나라는 이미 조나라를 돕고 있으며, 위나라와 연나라도 조나라를 돕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연은 노중련이 어떻게 위나라를 설득하여 조나라를 돕게 할 것인지 궁금해하였다. 노중련은 위나라에게 진나라 왕이 제왕이 되었을 때의 해악에 대해서 알려 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원연은 ‘열 명의 하인이 한 사람의 주인을 따르는 것은 힘이 그만큼 미치지 못해서가 아닌,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닌, 단지 주인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라며 거절했다.

“그렇다면 위나라는 진나라에 비교하면 하인과 같다는 말씀입니까? 그럼 나는 진나라 왕에게 위나라 왕을 삶아 젓을 담그라고 해야겠소."

신원연이 노중련의 말을 듣고 불쾌해 하자 노중련이 말을 이었다.

“옛날 구후, 악후, 문왕은 은나라 주왕을 섬기던 삼공이었습니다. 구후에게는 미모의 딸이 있어서 주왕에게 바쳤지만 주왕은 딸이 추녀라며 구후를 죽여 젓을 담갔습니다. 악후가 이를 강하게 말리자 악후도 죽여서 포를 떴습니다. 문왕이 이 말을 듣고 탄식했다는 이유로 창고에 가두었다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위나라 왕은 똑같은 왕인데 어째서 갑자기 젓이 되고 포를 뜨는 처지가 되려는 것입니까?

진나라가 천하의 대국이면 위나라 역시 대국이고 왕들 또한 다 같은 왕입니다. 진나라가 한 번 이긴 것을 보고 진나라에게 복종해서 제왕이라고 부른다면, 이는 삼진의 대신들을 종이나 첩만도 못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진나라가 제왕의 칭호를 받게 된 이후에도 계속 해서 욕심을 가진다면, 제후의 대신들을 갈아치우고 관직을 뺏어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관직을 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나라는 어찌 평안하게 지낼 것이며, 장군 또한 어찌 총애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신원연은 이 말을 듣자 일어나서 두번 절하며, 노중련을 천하의 선비라고 칭하며 다시는 진나라 왕을 제왕이라고 하지 않겠다고 사과했다.

진나라 장군은 이 소문을 전해 듣고 두려워하면서 군사를 50리 후퇴시켰다. 이 때 위나라에서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진나라 군대를 공격했기 때문에 진나라는 마침내 철수했다. 평원군은 노중련에게 벼슬을 내리려고 했지만 노중련은 끝까지 받지 않았다. 그래서 평원군은 술자리를 베풀어 노중련에게 천 금을 바쳤지만 노중련은 웃으며 사양했다.

“천하의 선비가 귀한 까닭은 남의 걱정을 덜어 주고 어려움을 없애 주며, 다툼을 해결해 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상은 받는 것은 장사꾼이나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노중련은 말을 마치고 인사하며 떠난 후 평생 평원군과 마주치지 않았다.  

연나라 장수에게 편지를 보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후 연나라 장군이 제나라를 쳐서 요성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요성 사람 중 한 사람이 장군을 연나라에 모함했다. 장군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 연나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뒤 제나라 전단이 요성을 공격했는데, 1년이 지나도 요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이 때 노중련이 나서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 후 화살 끝에 매달아서 성 안으로 쏘아 보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거슬러서 불리한 처지에 빠지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죽음이 두려워 명예를 잃지 않고, 충성스러운 사람은 제 몸만을 앞세워 임금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장군은 모함을 당한 노여움에 왕 밑으로 믿을 만한 신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충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요성을 잃게 되면 제나라에 자신의 위엄을 뻗치지 못하므로 용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명성이 무너지게 되면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 것인데,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므로 군주들은 이런 사람을 신하로 쓰지 않을 것이며 유세객들도 외면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거스르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장군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생사영욕(生死榮辱), 귀천존비(貴賤尊卑)의 갈림길에 있으니,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여 세상의 속된 사람들과 행동을 똑같이 하지 않도록 하시오.
(중략)
지금 연나라는 임금과 신화가 모두 혼란스러우며 조나라에게 수도마저 포위당했습니다. 장군이 피폐해진 요성의 백성을 제나라의 군사들과 맞서게 하는 것은 마치 묵적의 송나라를 위해 초나라를 막아낸 것과 같습니다. 인육을 먹고 사람의 뼈로 불을 때면서도 병사들이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은 손빈의 군사와 같을 정도로 장군의 재능은 천하에 드높습니다. 그렇지만 병력과 무기가 온전할 때 연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 같습니다.  
  당신이 온전하게 연나라로 돌아간다면 연나라 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백성들은 부모를 만난 듯 기뻐할 것이고, 당신의 친구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당신의 업적을 밝힐 것입니다. 위로는 고립된 왕을 도와 신하를 통제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위해서 유세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국정을 바르게 하고 풍속을 고친다면 공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여론을 등지고 제나라로 가시오. 제나라는 장군에게 땅을 쪼개어서 봉지를 정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제나라와 함께 오랫동안 부귀를 누리며 존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또한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 두 계책은 이름을 드러내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일로 깊이 생각해 보고 한 가지를 택하시오.
나는 ‘조그마한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드러낼 수가 없고, 조그마한 부끄러움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관중이 제나라 환공을 쏘아 허리띠 정면에 붙어 있는 장식을 맞춘 것은 반역 행위였고, 공자 규를 버리고 함께 죽지 않은 것은 비겁한 행위였으며, 결국 잡혀서 수갑과 차꼬를 차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행동을 한 자는 세상의 군주가 신하로 쓰기를 원하지 않고, 마을의 사람들도 사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관중이 옥에 갇혀 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욕을 피하지 못하고 노비들 또한 그 이름이 함께 불려 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관중은 다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나라가 위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환공을 도와서 오패의 으뜸으로 만들어, 그 명성이 천하에 달해 이웃 나라까지 비쳤던 것입니다. 또 조말은 노나라 장군이 되어 세 번 싸워서 세 번 다 졌습니다. 만약 조말이 스스로 목을 베었다면 오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말은 돌아와 노나라 임금과 계책을 꾸몄습니다. 환공이 천하의 제후를 만나는 자리에서 칼 한 자루만을 믿은 채 단상에 올라 환공의 가슴을 겨누었지만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 번 졌던 설욕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조그마한 부끄러움과 절개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죽고 자손의 뒤를 끊어 공과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찰나의 울분, 원한을 버리고 영원히 이름을 드높였으며, 대를 이을 공을 세운 것입니다. 바라건대 장군은 이 중 한 가지를 골라서 행하시오.

  연나라 장군은 이 편지를 읽고 사흘 동안이나 울며 어떻게 할지 궁리했다. 그러나 연나라로 돌아가면 이미 왕과의 사이가 나빠져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제나라에 항복하려고 하니 이미 제나라 군사를 수없이 죽여 후에 치욕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제나라 왕은 노중련에게 벼슬을 내리려고 하였으나 그는 몸을 피해 바닷가에 숨어 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귀한 몸이 되어 남에게 얽매여 살기보다, 가난한 몸으로 세상을 가볍게 내 마음대로 살 것이다.”


 

이백의 우상 노중련

당대의 시인 이백은 노중련을 정치적 우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노중련은 달변가이자 책사였으며, 정치에 참여해 책략을 제시하면서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방법을 행하지 않았고, 그 후 그의 생애 마지막을 유유자적하게 홀로 보냈기 때문이다. 노중련은 신선과도 같이 신출귀몰하고 용 같기도 했다. 노중련의 성격과 이백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이백은 노중련이 부와 사익을 멀리 하고 의로운 일을 중시하는 점을 특히 좋아했다.
 

관련 고사성어

노중련의 일화와 관련된 고사성어로는 배난해분(排難解紛)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위험을 없애주고 어려움을 해결해준다는 뜻으로 조나라 효성왕 시절 노중련이 조나라에 닥친 위험과 문제를 해결해주었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사마천의 평가

노중련의 전국시대 활약상은 사마천의 사기의 노중련•추양 열전 부분에서 읽어볼 수 있는데, 사마천은 이 두 사람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였다. 권력과 높은 신분에도 굴하지 않고 뛰어난 언변을 바탕으로 그들의 의견을 소신껏 펼쳤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 사마천, 「사기 3.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 김진연 역, 서해문집, 2002, p.49~57
  • 사마천, 「사기 열전 1」, 김원중 역, 민음사, 2015, p.547~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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