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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豐’은 고대에 제사를 할 때 쓰던 ‘[[豆]]’ 즉 용기가 가득 찬 모양으로, 풍성함을 의미한다. [[갑골문]]은 ‘豆’에 두 개의 ‘[[亡]]’ (고대시대 도망갔다가 붙잡혀 온 노비의 손과 발을 자른 형상)을 더했다. 사람들의 제사에는 자연스레 소와 양 등이 풍부했다. 노예 사회의 잔인한 풍습을 반영하였다. 초기 [[금문]]은 갑골문을 따라했지만, 다수의 금문들과 [[소전]]은 무성한 풀들로 풍성함을 표현했다. [[예서]]는 고대 문자의 구성에 기초해서 사각형을 원으로 대체했고, 금문이 되었다. 오늘날 간단하게 '丰'을 쓰는데, '丰'도 고대 문자로, 따로 해석이 있다.<ref>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p.71.</ref><br> | ‘豐’은 고대에 제사를 할 때 쓰던 ‘[[豆]]’ 즉 용기가 가득 찬 모양으로, 풍성함을 의미한다. [[갑골문]]은 ‘豆’에 두 개의 ‘[[亡]]’ (고대시대 도망갔다가 붙잡혀 온 노비의 손과 발을 자른 형상)을 더했다. 사람들의 제사에는 자연스레 소와 양 등이 풍부했다. 노예 사회의 잔인한 풍습을 반영하였다. 초기 [[금문]]은 갑골문을 따라했지만, 다수의 금문들과 [[소전]]은 무성한 풀들로 풍성함을 표현했다. [[예서]]는 고대 문자의 구성에 기초해서 사각형을 원으로 대체했고, 금문이 되었다. 오늘날 간단하게 '丰'을 쓰는데, '丰'도 고대 문자로, 따로 해석이 있다.<ref>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p.71.</ref><br> | ||
《[[설문해자]]》에는, “‘豐 은 ‘豆’에 물품이 가득 채워 풍만하다는 뜻이다. ‘豆’를 구성 요소로 하고 있으며, 상형자이다. 일설에는 《鄕飮酒禮》에「‘豐’이라는 제후국이 있었다.」라고도 하였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 《[[설문해자]]》에는, “‘豐 은 ‘豆’에 물품이 가득 채워 풍만하다는 뜻이다. ‘豆’를 구성 요소로 하고 있으며, 상형자이다. 일설에는 《鄕飮酒禮》에「‘豐’이라는 제후국이 있었다.」라고도 하였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 ||
− | 갑골문에서는 1.지명 2.인명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ref>손예철, 『간명 갑골문 자전』, 박이정, 2017, p.233.</ref> | + | 갑골문에서는 1.지명 2.인명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ref>손예철, 『간명 갑골문 자전』, 박이정, 2017, p.233.</ref><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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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
2020년 12월 20일 (일) 17:59 판
語源
‘豐’은 고대에 제사를 할 때 쓰던 ‘豆’ 즉 용기가 가득 찬 모양으로, 풍성함을 의미한다. 갑골문은 ‘豆’에 두 개의 ‘亡’ (고대시대 도망갔다가 붙잡혀 온 노비의 손과 발을 자른 형상)을 더했다. 사람들의 제사에는 자연스레 소와 양 등이 풍부했다. 노예 사회의 잔인한 풍습을 반영하였다. 초기 금문은 갑골문을 따라했지만, 다수의 금문들과 소전은 무성한 풀들로 풍성함을 표현했다. 예서는 고대 문자의 구성에 기초해서 사각형을 원으로 대체했고, 금문이 되었다. 오늘날 간단하게 '丰'을 쓰는데, '丰'도 고대 문자로, 따로 해석이 있다.[1]
《설문해자》에는, “‘豐 은 ‘豆’에 물품이 가득 채워 풍만하다는 뜻이다. ‘豆’를 구성 요소로 하고 있으며, 상형자이다. 일설에는 《鄕飮酒禮》에「‘豐’이라는 제후국이 있었다.」라고도 하였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갑골문에서는 1.지명 2.인명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