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壺"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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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상형자로 잘록한 목과 볼록한 배와 두루마리 발에 뚜껑을 가진 호리병을 그렸다. 선비 士(사)는 원래 호리병의 뚜껑을 그린 것인데 예서에 들면서 지금처럼 잘못 변했다. 그래서 호리병이 원래 뜻이며, 호리병처럼 생긴 기물의 총칭이 되었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ref> | |
‘주전자, 항아리, 호리병’이라는 뜻의 ‘壺’자는 최초의 몇몇 왕조 시대에 술을 데우는 데에 쓰는 호리병을 지칭했다. 오늘날에도 찻주전자 茶壺(다호), 물주전자 水壺(수호)처럼 어떤 것을 데우는 기구를 가리키는 단어에는 ‘壺’자가 들어있다. <br> | ‘주전자, 항아리, 호리병’이라는 뜻의 ‘壺’자는 최초의 몇몇 왕조 시대에 술을 데우는 데에 쓰는 호리병을 지칭했다. 오늘날에도 찻주전자 茶壺(다호), 물주전자 水壺(수호)처럼 어떤 것을 데우는 기구를 가리키는 단어에는 ‘壺’자가 들어있다. <br> | ||
‘壺’자는 갑골문에 자주 출현한다. 이 글자는 키가 아주 크고 몸체가 무거우며 아래쪽에 튼튼한 받침대가 있는 호리병을 지칭한다. 또한 어떤 것은 목 부분이 매우 아름답고 어떤 것은 옮기기 쉽도록 작은 손잡이가 달려있다. 대부분의 호리병 높이가 50cm정도라 사용할 때 매우 뜨겁기 때문에 손잡이 부분은 정말 필요했을 것이다. | ‘壺’자는 갑골문에 자주 출현한다. 이 글자는 키가 아주 크고 몸체가 무거우며 아래쪽에 튼튼한 받침대가 있는 호리병을 지칭한다. 또한 어떤 것은 목 부분이 매우 아름답고 어떤 것은 옮기기 쉽도록 작은 손잡이가 달려있다. 대부분의 호리병 높이가 50cm정도라 사용할 때 매우 뜨겁기 때문에 손잡이 부분은 정말 필요했을 것이다. | ||
그런데 호리병과 '壺(호)'자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뚜껑에 관한 것이다. 즉 갑골문과 금문에 표현된 호리병에는 모두 뚜껑이 있는데, 동시대의 실제 기물에는 대부분 뚜껑이 없다. 물론 도기로 된 주나라 때의 호리병이 오늘날까지 보존돼 온 호리병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壺(호)'자는 이런 호리병과 유사한 기물에 근거해 만들어진 글자임에 틀림없다. 한편 뚜껑은 쉽게 깨지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이미 골치 아픈 문제이다. 특히 도기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언제나 청동기와 관련돼 있다. 청동기는 일반적으로 -글자에서 보이는 것처럼- 뚜껑이 있다. 그렇다면 청동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뚜껑이 발견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호리병의 뚜껑은 주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보편화됐는데, 이는 '壺(호)'자가 만들어진 시기보다 수백 년 뒤의 일이며, 이때의 뚜껑은 병뚜껑처럼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다.<ref>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ref> | 그런데 호리병과 '壺(호)'자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뚜껑에 관한 것이다. 즉 갑골문과 금문에 표현된 호리병에는 모두 뚜껑이 있는데, 동시대의 실제 기물에는 대부분 뚜껑이 없다. 물론 도기로 된 주나라 때의 호리병이 오늘날까지 보존돼 온 호리병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壺(호)'자는 이런 호리병과 유사한 기물에 근거해 만들어진 글자임에 틀림없다. 한편 뚜껑은 쉽게 깨지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이미 골치 아픈 문제이다. 특히 도기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언제나 청동기와 관련돼 있다. 청동기는 일반적으로 -글자에서 보이는 것처럼- 뚜껑이 있다. 그렇다면 청동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뚜껑이 발견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호리병의 뚜껑은 주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보편화됐는데, 이는 '壺(호)'자가 만들어진 시기보다 수백 년 뒤의 일이며, 이때의 뚜껑은 병뚜껑처럼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다.<ref>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ref> |
2022년 12월 27일 (화) 15:05 기준 최신판
語源
壺(호)는 고금에서 자주 사용하는 술이나 차 등 액체를 담는 기구이다. 설문해자에서는 “壺는 곤오라고도 하며, 둥근 모양의 용기이다.”라고 설명했다. 형태는 조롱박에서 영감을 얻었기에 초기의 壺는 대부분 조롱박 모양이었고 ‘호(葫와 같은 음)’라 칭했다.
갑골문, 금문 그리고 소전은 비록 자형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조롱박에 뚜껑 또는 귀(손잡이)를 더한 형상이다. 이미 예서화가 된 한백서에서도 호의 모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간체자는 ‘壶’로 쓴다.[1]
文化
상형자로 잘록한 목과 볼록한 배와 두루마리 발에 뚜껑을 가진 호리병을 그렸다. 선비 士(사)는 원래 호리병의 뚜껑을 그린 것인데 예서에 들면서 지금처럼 잘못 변했다. 그래서 호리병이 원래 뜻이며, 호리병처럼 생긴 기물의 총칭이 되었다.[2]
‘주전자, 항아리, 호리병’이라는 뜻의 ‘壺’자는 최초의 몇몇 왕조 시대에 술을 데우는 데에 쓰는 호리병을 지칭했다. 오늘날에도 찻주전자 茶壺(다호), 물주전자 水壺(수호)처럼 어떤 것을 데우는 기구를 가리키는 단어에는 ‘壺’자가 들어있다.
‘壺’자는 갑골문에 자주 출현한다. 이 글자는 키가 아주 크고 몸체가 무거우며 아래쪽에 튼튼한 받침대가 있는 호리병을 지칭한다. 또한 어떤 것은 목 부분이 매우 아름답고 어떤 것은 옮기기 쉽도록 작은 손잡이가 달려있다. 대부분의 호리병 높이가 50cm정도라 사용할 때 매우 뜨겁기 때문에 손잡이 부분은 정말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호리병과 '壺(호)'자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뚜껑에 관한 것이다. 즉 갑골문과 금문에 표현된 호리병에는 모두 뚜껑이 있는데, 동시대의 실제 기물에는 대부분 뚜껑이 없다. 물론 도기로 된 주나라 때의 호리병이 오늘날까지 보존돼 온 호리병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壺(호)'자는 이런 호리병과 유사한 기물에 근거해 만들어진 글자임에 틀림없다. 한편 뚜껑은 쉽게 깨지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이미 골치 아픈 문제이다. 특히 도기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언제나 청동기와 관련돼 있다. 청동기는 일반적으로 -글자에서 보이는 것처럼- 뚜껑이 있다. 그렇다면 청동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뚜껑이 발견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호리병의 뚜껑은 주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보편화됐는데, 이는 '壺(호)'자가 만들어진 시기보다 수백 년 뒤의 일이며, 이때의 뚜껑은 병뚜껑처럼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