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기
역이기(酈食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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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중국 진(秦) ~ 한(漢) |
별칭 | 역생(酈生) |
목차
요약
개요
- 전한 초기 진류(陳留) 고양(高陽)사람이다. 참모(參謀)이자 세객(說客)으로서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 BC 247? ~ BC 195)을 도왔으며, 특히 제후(諸侯)들을 설득하여 끌어들이는 외교(外交) 활동에서 큰 공(功)을 세웠다. 하지만 제왕(齊王) 전광(田廣)에게 한(漢)에 복속(服屬)할 것을 설득하기 위해 제(齊)에 머물다가, 공(功)을 탐(貪)한 한신(韓信, ? ~ BC 196)이 제(齊)를 침공하여, 분노한 제왕(齊王)에게 살해되었다. 역이기(酈食其)가 죽자 유방(劉邦)은 몹시 애석해했으며, 천하(天下)를 평정한 뒤에 그의 아들 역개(酈疥)를 고량후(高梁侯)로 봉(封)하고 무수(武遂)를 식읍(食邑)으로 주어 역이기의 공(功)을 기렸다. 역이기(酈食其)의 동생인 역상(酈商)도 무장(武將)으로 활약하여 한(漢)에서 승상(丞相)의 지위까지 올랐으며, 곡주후(曲周侯)로 봉(封)해졌다.
생애
출신이 미천하다
- 전한 초기 진류(陳留) 고양(高陽, 지금의 河南省 杞縣) 출신이다. 이름은 이기(食其)이며, 역생(酈生)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생(生)’은 ‘선생님’ 정도의 의미로, ‘역생(酈生)’은 그가 학자임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그는 글을 즐겨 읽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생계조차 이을 수 없게 되자, 마을 성문을 관리하는 감문리(監門吏)가 되었다. 그러나 진류(陳留)현의 현인이나 호걸들 누구도 그를 데려다 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술을 즐기고 능력을 드러내지 않아 진류현 사람들도 모두 그를 미치광이 선생이라고 불렀다.
패공의 사과를 받아내다
진승(陳勝)과 항량(項梁) 등이 진(秦)에 반기를 들고 군사를 일으키자, 여러 장군들이 각지를 공략하면서 고양(高陽) 땅을 지나갔다. 역생(酈生)은 그 장수들이 모두 도량이 좁고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예절을 좋아하며,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원대한 구상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깊이 감추어 두고 있었다. 그 후 역생은 패공 유방(劉邦)이 군사를 이끌고 진류현의 외곽 지역을 공략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 패공 수하의 기마병(骑兵) 한 사람이 마침 역이기(酈食其)가 살던 마을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패공 유방이 때때로 그에게 읍에서 눈길을 끄는 현자나 호걸들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그 기마병이 고향에 들렀을 때, 역이기가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를 이러했다.
역이기(酈食其): 내가 듣기에 패공이 사람을 깔보고 업신여기지만, 원대한 뜻을 지녔다고 들었소.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사귀며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인데, 나를 그에게 소개시켜 줄 만한 이가 없소. 자네가 만약 패공을 보거든 그에게, ‘제 고향 마을에 역생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는 예순 살 남짓이고 키는 팔 척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치광이 선생이라 부르지만 그는 자신을 미치광이 선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라고 전해주게. 기마병(骑兵): 패공은 학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여러 빈객들 중에 유관을 쓰고 오는 자가 있으면 언제나 그 관을 뺴앗에 그 안에 소변을 누곤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늘 목청 높여 유생을 욕합니다. 학자가 유세해 봐야 소용 없을 것입니다. 역이기(酈食其): 다만 말이나 전해주게.
그 기마병은 패공 유방에게 차분하게 역이기가 일러준 대로 말을 전하였다.
패공 유방이 고양 땅의 객사에 이르자, 사람을 보내 역이기를 불러오게 하였다. 역이기가 객사에 이르러 패공을 만나러 들어갔을 때, 패공 유방은 마침 침상에 걸터앉아 두 명의 여자로 하여금 발을 씻기게 하면서 역이기를 만났다. 역생은 들어가서 절을 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장읍을 한 뒤 패공 유방과 나눈 대화는 이러하다.
역이기(酈食其): 족하(足下, 당신의 존칭)께서는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공격하려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치려고 하십니까? 유방(劉邦): 이 글쟁이 놈아! 천하 사람들이 진나라에 의해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해 왔기 때문에 제후들이 함께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려 하고 있는데, 어째서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공격한다는 말을 하고 있느냐? 역이기(酈食其): 만약 무리를 모아 의병으로 조직하여 무도한 진나라를 토벌하시려면, 장자(덕망이 있는 사람)을 오만한 태도로 접견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자 패공 유방은 발 씻던 것을 멈추고 일어나 의관을 바로 하고 역생을 상석에 앉힌 뒤 그에게 사과하였다. 이에 역이기는 육국이 합종과 연횡을 했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패공은 기뻐하며 역이기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물었다.
유방(劉邦): 계책으로 장차 어떤 것을 내는 것이 좋겠소? 역이기(酈食其): 족하께서 오합지졸을 모으고 뿔뿔이 흩어졌던 병사들을 거두어들였지만 만 명도 채 못 됩니다. 이 정도 병력으로 강한 진나라에 쳐들어가려 하신다면, 이는 소위 호랑이 입안으로 찾아 들어가는 격입니다. 이곳 진류현은 천하의 요충지이자 사방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교통이 편리하며, 지금 성안에는 많은 곡물이 쌓여 있습니다. 소인은 진류현의 현령과 친분이 있으니 신을 사신으로 보내 주시면 그를 족하께 항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현령이 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족하께서 군대를 일으켜 그곳을 치십시오. 신은 성안에서 호응하겠습니다.
패공은 역생을 사신으로 보내고, 군대를 이끌고 그 뒤를 따라갔다. 마침내 진류현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진류현을 점령하는 데 공(功)을 세운 역이기에게는 광야군(廣野君)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역이기는 자기의 동생 역상(酈商)을 채공에게 천거하여, 수천 명을 이끄는 장수가 되어 패공 유방을 따라 서남쪽으로 가 여러 지역을 공략하도록 하였다. 한편 역이기는 늘 유세하러 다니는 선비의 신분으로, 급한 일이 생기면 세객(說客)으로서 제후(諸侯)들을 회유하고 설득하는 일을 맡아 활약하였다.
천하의 민심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원전 204년, 한(漢) 3년 가을, 서초패왕 항우(項羽)가 한(漢)을 공격하여 형양(滎陽)현을 함락시키자, 한나라 군사는 공공(鞏, 지금의 河南省 鞏縣)현과 낙양(洛陽)현 일대로 달아나서 주둔했다. 그 무렵 초(楚)는 회음후 한신(韓信)이 조나라를 격파하고, 팽월(彭越)이 옛 양나라 땅에서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나누어 보내 조나라와 양나라를 도왔다. 이때 회음부 한신은 동쪽으로 진격하여 제나라를 치려고 하였다. 한왕 유방(劉邦)은 형양현과 성고(成皐)현에서 여러 차례 고전하고 난 뒤라, 성고현 동쪽 땅을 내주고, 공현과 낙양에 주둔하여 초나라에 대항할 심산이었다. 이 때 역이기(酈食其)는 이에 반대하며, 항우(項羽)의 군대가 양곡(糧穀) 교역(交易)의 중심지인 오창(敖倉, 지금의 河南省 成皐縣 敖山에 설치한 창고)을 버려두고 동진(東進)한 것은 초(楚)의 천운(天運)이 다한 것이라며, 성고 지역을 포기하지 말고 이 기회에 오창을 빼앗아야 한다는 계책을 제시하였다. 역이기가 한 말을 이러했다.
역이기(酈食其): 신이 듣건대,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제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고,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제왕의 대업을 이룰 수 없다 합니다. 제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지만,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깁니다. 오창(敖倉, 敖山에 세워진 식량 창고)에는 천하 물자의 운송을 담당해 온 지 오래되어, 제가 듣기로는 그곳에 막대한 식량이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초나라 군대가 형양을 함락시키고도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오히려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가면서 죄를 지어 변방으로 쫓겨나 병사가 된 자들에게 성고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있으니, 이는 하늘이 한나라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초나라의 군사를 공격하여 쉽게 취할 수 있을 때인데, 한나라가 군사를 돌려 퇴각하는 것은 스스로 좋은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또한 두 영웅은 함께 존립할 수 없는 법입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랫동안 맞서 싸우면서 승자와 패자를 분명하게 결정짓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천하는 동요할 것이며, 농부들은 쟁기를 내려놓고 길쌈하는 여인들은 베틀에서 내려와 천하의 민심이 불안할 것입니다. 부디 족하께서는 시급히 군사를 다시 진격시켜, 형양현을 탈환하고 오창의 식량을 손에 넣은 뒤 험준한 성고현을 단단히 방어하십시오. 또한 태항산을 넘어가는 태항형을 봉쇄하고, 비호구(비호의 입구)를 틀어막고, 백마(白馬)진을 지키십시오. 이로써 제후들에게 실력을 과시하고 유리한 지형으로 적을 누르고 있는 형세임을 보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천하가 알고 귀의해 올 것입니다. 지금 연나라와 조나라는 이미 평정되었지만 제나라는 아직 항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전광(田廣)은 1000리의 넓은 제나라를 차지하고 있고, 전간(田間)은 20만 군대를 이끌고 역하(歷下, 지금의 山東省 歷城)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전씨 일족의 세력은 아직 막강합니다. 제국은 바다를 등지고 황하와 제수에 의해 막혀 있으며,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인접하고 있는 한편, 그 나라 사람들은 권모술수에 뛰어납니다. 족하께서 비록 수십만 명의 군사를 보내더라도 몇 년 몇 달이 지나도록 격파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조서를 받들고 제나라 왕에게 가 제나라가 한나라에 귀속하여 동쪽의 속국이 되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유방은 역이기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시 오창(敖倉)을 수복하여 지키면서, 역이기를 제(齊)왕 전광(田廣)에게 보내 전광을 설득하여 한(漢)의 편으로 끌어들이도록 하였다.
제나라에 가 유세하다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만난 역이기는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다음은 그들이 나눈 대화이다.
역이기(酈食其): 대왕께서는 천하의 민심이 어디로 돌아가실지 아십니까? 전광(田廣): 모르오. 역이기(酈食其): 대왕께서 천하의 인심이 어디로 귀속될지 아시면 제나라는 보존될 수 있고, 만약 천하의 인심이 어디로 귀속될지 모르시면 보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광(田廣): 천하의 인심이 어디로 귀속되겠소? 역이기(酈食其): 한나라에 귀속될 것입니다. 전광(田廣): 선생께서는 무슨 연유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역이기(酈食其): 한왕과 서초패왕 항왕이 힘을 합쳐 서쪽으로 나아가 진나라를 공격할 때, 함양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그곳의 왕이 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한왕이 먼저 함양에 먼저 들어갔지만, 서초패왕은 약속을 어기고 함양을 내주지 않고, 한중 지역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서초패왕은 의제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게 한 뒤 살해하였습니다. 한왕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촉과 한중 지역의 군사를 일으켜 삼진을 공격한 뒤, 함곡관을 나와 의제를 죽인 죄를 따져 물었습니다. 그리고 천하의 병사들을 거둬들여 각 제후들의 후예를 세웠습니다. 성을 항복시키면 그 공을 세운 장군을 열후로 봉하고, 재물을 얻으면 그것들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며 천하 사람들과 이익을 함께하였습니다. 이에 영웅, 호걸, 현인, 재사들이 모두 기꺼이 한왕을 위해 능력을 발휘하려 합니다. 제후들의 군사가 사방에서 모여들었으며, 촉과 한중 지역의 식량이 나란히 이어 만든 큰 배에 실려 내려오고 있습니다. 서초패왕은 약속을 어겼다는 오명과 의제를 살해하였다는 부담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공로는 기어가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죄는 잊는 일이 없습니다. 싸움에서 승리해도 상을 내릴 줄 모르고, 성을 함락시켜도 봉읍을 주지 않습니다. 또 항씨의 일족이 아니면 아무도 중요한 자리에 앉을 수 없으며, 사람을 봉하기 위해서 관인은 새기더라도 아까워 손에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주지 못합니다. 성을 공격하여 재물을 얻어도 쌓아 두기만 할 뿐 상으로 주는 일이 없습니다. 때문에 천하의 인심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어진 사람과 재능 있는 유생들은 그를 원망하며 그를 위해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유생들이 한나라 왕에게로 귀의한다는 것은 앉아서도 예측 할 수 있습니다. 한왕은 촉과 한중 지역의 군사를 일으켜 삼진을 평정하였으며, 서하를 건너 밖으로 나와 상당군 지역의 군사를 거두어 들였고, 정형을 함락시키고 성안군 진여를 죽였으며, 북위를 깨뜨려 성 서른두개를 함락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치우의 군대와 다름없는 활약으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내려준 복입니다. 지금 한나라는 이미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였으며, 험준한 성고현을 단단히 방어하면서 백마진(백마 나루터)을 지키고, 태항산을 넘어가는 태항형의 고갯길을 봉쇄하고, 비호구를 틀어막았습니다. 천하의 제후들 중에서 뒤늦게 한왕에게 항복하는 자는 먼저 멸망할 것입니다. 대왕께서 서둘러 먼저 한왕에게 항복한다면 제나라의 사직은 지킬 수 있지만, 한왕에게 항복하지 않는다면 멸망의 위기는 즉시 들이닥칠 것입니다.
제왕 전광은 역이기의 말이 옳다고 여겨 한(漢)에 투항하기로 한 제(齊)는 한군(漢軍)에 대한 방어 태세를 풀어 버렸다. 그리고 역이기와 함께 날다가 폭음을 하였다.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다
이 소식을 들은 한(漢)의 장수(將帥) 한신(韓信)은 역이기의 공(功)을 시기하여 밤에 평원(平原, 지금의 山東省 平原縣)에서 강을 건너 역하를 점령하고 제(齊)의 도읍인 임치(臨淄, 지금의 山東省 淄博)로 쳐들어왔다. 이에 한군의 공격 소식을 들은 전광은 자신을 속였다고 분노하여 역이기를 솥에 삶아 죽였다. 아래는 역이기가 죽기 전 전광과 나눈 대화이다.
전광(田廣): 네가 한나라 군대를 멈출 수 있으면 내 너를 살려 줄 것이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너를 삶아 죽일 것이다. 역이기(酈食其): 큰일을 하는 자는 사소한 일에 일일이 얽매이지 않는 법이며, 높은 덕을 쌓은 자는 다른 사람의 비난에 개의치 않는 법이오. 이 몸이 그대를 위해 달리 할 말은 없구려.
후대
한나라 12년, 역이기(酈食其)의 동생 곡주후(曲周侯) 역상(酈商)이 승상의 신분으로 군대를 이끌고 경포를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이에 한나라 고조 유방이 공신을 고르고 열후를 봉(封)하면서 역이기를 떠올렸다. 역이기의 아들 역개(酈疥)는 일찍이 군대를 이끌고 싸움터에 몇 차례 나갔으나 그 공이 열후로 봉할 정도는 못 되었다. 그러나 고조 유방이 그 아버지 역이기의 공로를 생각하여 역개를 고량후(高梁侯)로 봉하였다. 나중에 무수(武遂)땅으로 식읍(食邑)을 바꾸어주었으며, 3대에 걸쳐 대를 이어 갔다.
기타
관련 단어
高阳酒徒(고양주도)
역이기와 유방이 만났을 때, 역이기는 자신을 유생이 아닌 고양(高阳)의 술꾼(酒徒)이라고 소개했다. 유방은 그를 마음에 들어 했고, 이렇게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만났다. 高阳酒徒(고양주도)는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이미 관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관련 한시어
一語一黙 榮辱所自 食其以之而烹(일어일묵 영욕소자 이기이지이팽) 한 마디 말과 한 순간의 침묵이 영욕의 원인이 되나니, 역이기가 그로써 삶아졌네. <이규보(李奎報) 외부(畏賦)>
厭追洛社新少年 閑憶高陽舊酒徒(염추낙사신소년 한억고양구주도) 서울 모임의 새 소년들을 좇아다니기 싫어서, 고양의 옛 술 친구를 생각한다네. <이인로(李仁老) 여우인야화(與友人夜話)>
미디어의 역이기
- 1998년, 드라마 《汉刘邦(한유방)》에서 '王兴振'이 역이기 역을 맡았다.
- 2004년, 드라마 《楚汉骄雄(초한교웅)》에서 '余子明'이 역이기 역을 맡았다.
- 2005년, 드라마 《楚汉风云(초한풍운)》에서 '张学文'이 역이기 역을 맡았다.
- 2011년, 드라마 《楚汉传奇(초한지)》에서 '石维坚'이 역이기 역을 맡았다.
참고 자료 및 문헌
- 『사기열전』, 사마천 저, 김원중 역, 을유문화사(2002)
- 『사기열전』, 사마천 저, 김원중 역, 민음사(2015)
- 『중국역대 인명사전』, 임종욱 저, 이회문화사(2010)
- 『한시어사전』, 전관수 저, 국학자료원(2007)
- 바이두 백과, “酈食其”, http://baike.baidu.com/item/%E9%83%A6%E9%A3%9F%E5%85%B6, (2017.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