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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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韓信)

출생 미상
초나라 회음
사망 BC196년


개요

한신(韓信, ?~BC196)은 《사기열전》 제32편 회음후열전에 나오는 장수이다. 한신은 회음 사람으로, 후에 회음이라고 하는 동네의 영주가 되었기 때문에 '회음후'라고도 한다. 한신은 유방의 부하로, 소하(蕭何)·장량(張良)과 함께 한(漢)의 건국을 도왔다.

생애

출생

한신의 출생에 대해 왕족 출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한신은 옛 (楚)의 영토 회음(淮陰) 출신의 평민이다. 몇몇의 책에서는 한신을 (韓)나라 왕족 출신으로 서술하였으나, 이는 한신과 동명이인이었던 한(韓)왕 신과 혼동한 오류이다.

밥을 얻어먹다

한신은 어려운 형편으로 자주 밥을 얻어먹곤 했는데, 특히 남창이라는 동네의 정장 아내에게 자주 신세를 졌다. 이런 일이 몇 달간 반복되자 정장의 아내는 그를 못마땅히 여겨 새벽에 밥을 지어 먹고 상을 치워버린 뒤, 한신이 아침에 나타나도 밥을 차려주지 않았다.
하루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던 한신을 가엾게 여긴 한 여인이 밥을 나눠주었다. 며칠 동안 그런 일이 계속되자 한신은 언젠가 꼭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감사인사를 전했으나, 여인은 그저 가엾게 여겨 나눠주었을 뿐이라며 화를 내고는 떠났다.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다

회음 사람들은 한신을 비웃음거리로 여겼다. 하루는 시장에서 만난 한 젊은이가 한신을 모욕하며 말하였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에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갔다. 이 일로 인해 시장 사람들은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유방을 만나다

진시황이 죽은 뒤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한신은 고향을 떠나 항우의 군대에 들어갔다. 한신은 항우의 시중꾼인 낭중으로 일하면서 여러 차례 계책을 올렸으나 항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용되지 못한 한신은 항우를 떠나 유방에게 의탁했다. 한신은 유방의 밑에서 곡식 창고를 관리하는 연오라는 직책을 맡았는데, 이 때 법을 어겨 다른 열두 사람과 함께 사형을 받게 되었다. 한신의 차례가 되자 한신은 등공(滕公)이라는 장수에게 이렇게 외쳤다. "왕께서는 천하를 얻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어째서 대장부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이를 기특히 여긴 등공은 소하에게 한신을 추천했고, 소하 역시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유방에게 추천했다. 처음에 유방은 한신을 대단한 인물로 여기지 않아 식량과 말의 먹이를 관리하는 치속도위(治粟都尉)라는 자리를 주었는데, 이에 실망한 한신은 남정으로 가던 중 달아나버렸다.

달아난 한신을 쫓은 소하

한신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접한 소하는 유방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다급히 한신을 뒤쫓았는데, 이 때 유방은 소하마저 달아났다고 여겨 크게 상심하였다. 유방이 며칠 뒤 돌아온 소하를 추궁하자, 소하는 이렇게 답했다.

"그대는 어째서 도망쳤소?"
"신은 도망친 게 아니라 도망친 자를 뒤촞아 갔던 것입니다."
"그대가 뒤쫓은 자가 누군가?"
"한신입니다."
"장수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수십 명이나 되는데도 그대는 쫓아간 적이 없소. 한신을 뒤쫓았다는 것은 거짓말이오."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한신에 견줄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왕의 생각이 어느 쪽에 있는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제서야 유방은 한신을 다시 보게 되었고, 좋은 날을 택하여 제계하고 단장(壇場)을 설치하여 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한신의 업적

유방은 한신을 앞세워 동쪽 지방부터 평정하여 위나라와 황하 남쪽 땅을 차지하였다. 그 후 제나라, 조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를 공격해 팽성까지 이르렀으나, 패하여 돌아왔다. 그러자 제나라와 조나라는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동맹을 맺었고, 위나라도 초나라와 동맹을 맺어 한나라에 맞섰다. 이에 한신은 위나라를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 때 한신은 유방에게 사자를 보내 자신을 제나라의 임시 왕으로 세워달라고 하였는데, 유방은 격노하였으나 한신이 자신을 배신할 것을 염려하여 정식 왕으로 임명한 뒤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에 궁지에 몰린 항우가 무섭(武涉)이라는 사자를 보내 전쟁이 끝나면 유방은 한신을 제거할 것이라며 한신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으나, 한신은 거절하였다. 무섭이 떠나간 뒤 제나라 사람 괴통(蒯通)이 관상을 통해 한신을 설득하려 하였으나, 한신은 또다시 거절하였다.

"한나라 왕은 나를 정성껏 대접해주었습니다.
자기 수레로 나를 태워주고, 자기 옷을 나에게 입혀주며, 자기가 먹을 것을 나에게 먹여주었습니다.
내가 듣건대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라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괴통은 며칠 뒤 다시 한신을 설득하고자 하였으나, 한신은 끝내 괴통의 제안을 거절했다.

초나라 왕이 된 소하

한나라 5년 1월, 유방은 제나라 왕 한신을 옮겨서 초나라 왕으로 삼았다. 한신은 초나라에 이르자 빨래를 하며 밥을 먹여 주었던 여인을 찾아 1000금을 내렸다.
또 남창 정장에게 백 전(錢)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다가 중도에서 그만뒀기 때문이다."
또 시장에서 자신을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게 한 자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中尉)로 삼고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 것이다."

토사구팽

유방의 원수인 초나라 장수 종리매(鐘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맡긴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한신이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유방이 종리매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한신은 종리매를 보내줄 것인가, 보호해줄 것인가 갈등에 놓인다. 이에 종리매는 화를 내며 한신을 꾸짖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유방을 만났으나 유방은 한신을 묶어 뒷수레에 실었고, 한신은 탄복하며 말했다.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있는 신하는 죽게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한신은 죄를 용서받고 초왕에서 회음후로 격하되었으나, 후에 여후(呂后)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관련 TV 프로그램

  • 천하의 명장 한신 (大将军韩信): 2011년 방영되었던 중국의 36부작 드라마

평가

사마천의 평가

사마천은 사기 마지막 부분에서 한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한신이 도를 배우고 겸양한 태도로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유능함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功勳)은 아마도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망(太公望)등의 공훈과 견줄 수 있었을 것이고,
후세에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친인척이 모두 화를 당한 것도 마땅하다.

유방의 평가

진평(陳平)이 물었다. "폐하의 제장들 중 용병술이 한신을 뛰어 넘는 인물이 있습니까?"
유방이 답하였다. "용병술은 한신을 따라갈 사람이 없소."

참고문헌

  • 사마천, 『사기열전.1』,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 사마천, 『소설보다 재미있는 사기열전』, 김민수 편역, 평단문화사, 2008
  • 사마천, 『사기열전』, 안미란 엮음, 교원, 2011
  • 사마천, 『(만화)사마천 사기열전』, 정연 글; 진선규 그림, 김영사, 2011
  • 고우영, 『십팔사략5 항우 유방의 초한전』, 애니북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