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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21일 (화) 21:44 (차이 | 역사) . . (+4) . . 춘추시대의 사회
- 2016년 6월 21일 (화) 21:42 (차이 | 역사) . . (0) . . 경대부
- 2016년 6월 21일 (화) 21:41 (차이 | 역사) . . (+1) . . 목이
- 2016년 6월 21일 (화) 21:40 (차이 | 역사) . . (+4) . . 목이
- 2016년 6월 21일 (화) 21:35 (차이 | 역사) . . (+1,942) . . 새글 목이 (새 문서: 송양공의 서자로 송나라의 재상이었다. 그는 보기 드문 인재로, 송양공의 어리석음을 옆에서 바로잡고, 송나라 정치를 잘 이끌었다....)
- 2016년 6월 21일 (화) 21:10 (차이 | 역사) . . (-4) . . 송양공
- 2016년 6월 21일 (화) 21:08 (차이 | 역사) . . (-4) . . 3사 퇴보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21:00 (차이 | 역사) . . (+4) . . 춘추 오패와 패권다툼 (→제(齊)국의 패권)
- 2016년 6월 21일 (화) 20:58 (차이 | 역사) . . (-4) . . 3사 퇴보
- 2016년 6월 21일 (화) 20:53 (차이 | 역사) . . (+17) . . 건숙
- 2016년 6월 21일 (화) 20:49 (차이 | 역사) . . (+492) . . 건숙
- 2016년 6월 21일 (화) 20:32 (차이 | 역사) . . (+947) . . 새글 건숙 (새 문서: 건숙은 제나라 출신의 뛰어난 현인이다. 백리해가 송나라에서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낼 때,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교...)
- 2016년 6월 21일 (화) 20:17 (차이 | 역사) . . (+3) . . 백리해
- 2016년 6월 21일 (화) 20:03 (차이 | 역사) . . (+14) . . 백리해
- 2016년 6월 21일 (화) 20:01 (차이 | 역사) . . (+4) . . 종법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19:57 (차이 | 역사) . . (0) . . 춘추 오패와 패권다툼 (→초국의 패권)
- 2016년 6월 21일 (화) 16:47 (차이 | 역사) . . (+4) . . 존왕양이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16:46 (차이 | 역사) . . (+10) . . 종법
- 2016년 6월 21일 (화) 16:44 (차이 | 역사) . . (+887) . . 새글 종법 (새 문서: 봉건제의 혈연에 기초한 관계의 근간이 되는 제도이다. 종(宗)이란 같은 조상을 가진 한 집안을 의미하는데, 종에는 대종과 소종이 있다....)
- 2016년 6월 21일 (화) 16:43 (차이 | 역사) . . (-3) . . 존왕양이
- 2016년 6월 21일 (화) 16:40 (차이 | 역사) . . (+886) . . 새글 종법제 (새 문서: 봉건제의 혈연에 기초한 관계의 근간이 되는 제도이다. 종(宗)이란 같은 조상을 가진 한 집안을 의미하는데, 종에는 대종과 소종이 있다....)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16:23 (차이 | 역사) . . (+551) . . 새글 존왕양이 (새 문서: 춘추 시대엔 종법제 중심이었던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약해지고, 제후들의 세력이 강해져 패권을 다투었다. 이 때 특히 세력을 떨쳤던...)
- 2016년 6월 21일 (화) 16:07 (차이 | 역사) . . (-5) . . 춘추 (→초국의 패권)
- 2016년 6월 21일 (화) 15:54 (차이 | 역사) . . (+27) . . 경대부
- 2016년 6월 21일 (화) 15:50 (차이 | 역사) . . (+66) . . 새글 경(卿) (새 문서: 중앙정부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내직을 이르는 말.)
- 2016년 6월 21일 (화) 15:47 (차이 | 역사) . . (+83) . . 새글 경대부 (새 문서: 경(卿)과 대부(大夫)를 일컫는 말. 고위 벼슬아치를 뜻함.)
- 2016년 6월 21일 (화) 15:31 (차이 | 역사) . . (+4) . . 개자추
- 2016년 6월 21일 (화) 15:05 (차이 | 역사) . . (-28) . . 백리해
- 2016년 6월 21일 (화) 15:03 (차이 | 역사) . . (-7) . . 백리해
- 2016년 6월 21일 (화) 14:59 (차이 | 역사) . . (+20) . . 백리해
- 2016년 6월 21일 (화) 14:58 (차이 | 역사) . . (+1,653) . . 새글 백리해 (새 문서: 백리해는 우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출신이 매우 빈천하였지만, 뛰어난 책략을 가진 모사였다. 그는 위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으나 그의...)
- 2016년 6월 21일 (화) 14:29 (차이 | 역사) . . (+63) . . 춘추 (→참고 문헌)
- 2016년 6월 21일 (화) 14:22 (차이 | 역사) . . (-4) . . 춘추 (→진(秦)국의 패권)
- 2016년 6월 21일 (화) 14:19 (차이 | 역사) . . (+5) . . 송양공
- 2016년 6월 21일 (화) 14:14 (차이 | 역사) . . (-36) . . 송양공
- 2016년 6월 21일 (화) 14:13 (차이 | 역사) . . (+1,813) . . 새글 송양공 (새 문서: 송양공은 송의 19번째 군주이다. 그는 서형에게 태자 자리를 양보한 적이있어 덕망 높은 군주로 알려진다. 송나라는 중화 문화권에 속하...)
- 2016년 6월 21일 (화) 11:53 (차이 | 역사) . . (+48) . . 개자추
- 2016년 6월 21일 (화) 11:51 (차이 | 역사) . . (+2,692) . . 새글 개자추 (새 문서: 개자추는 19년 동안 진문공과 같이 유랑한 충신이었다. 진문공이 혜공에게 쫓겨 위나라에 갔을 때, 그는 여러 날 먹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
- 2016년 6월 21일 (화) 11:34 (차이 | 역사) . . (+13) . . 한식
- 2016년 6월 21일 (화) 11:29 (차이 | 역사) . . (+736) . . 새글 한식 (새 문서: 중국의 한식은 청명 다음날 또는 같은 날이라서 청명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청명절은 추석, 춘절, 국경절, 단오절과 함께 일컬어지...)
- 2016년 6월 21일 (화) 11:07 (차이 | 역사) . . (-12) . . 토론:개자추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11:04 (차이 | 역사) . . (+2,497) . . 새글 토론:개자추 (새 문서: 개자추는 진문공과 19년을 함께하며 같이 유랑한 사람이다. 진문공이 혜공에게 쫓겨 위나라를 갔을 때, 진문공은 여러 날 먹지 못해 허덕...)
- 2016년 6월 20일 (월) 23:36 (차이 | 역사) . . (+12) . . 3사 퇴보
- 2016년 6월 20일 (월) 23:16 (차이 | 역사) . . (-6) . . 3사 퇴보
- 2016년 6월 20일 (월) 23:15 (차이 | 역사) . . (+2,391) . . 새글 3사 퇴보 (새 문서: 중이는 공자 시절, 아버지의 애첩 여희의 모함으로 이순의 나이가 넘도록 유랑하게 된다. 그의 현복들은 국내로 다시 돌아와 왕위를 이...)
- 2016년 6월 20일 (월) 21:57 (차이 | 역사) . . (-7) . . 춘추 (→진(晉)국의 패권)
- 2016년 6월 20일 (월) 21:42 (차이 | 역사) . . (0) . . 춘추 (→진(晉)국의 패권)
- 2016년 6월 20일 (월) 16:44 (차이 | 역사) . . (+60) . . 춘추
- 2016년 5월 15일 (일) 22:18 (차이 | 역사) . . (+12) . . 토론:춘추
- 2016년 5월 15일 (일) 17:26 (차이 | 역사) . . (+496) . . 토론:춘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