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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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노벽(鲁壁)

노벽(魯壁) 또는 공벽(孔壁)이라고도 하며, 한나라 무제 때 노나라 공왕이 자신의 정원을 확장시키기 위해 옛 공자의 저택을 허물다가 그 벽 속에서 논어를 비롯한 경전이 고문의 형태로 나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명나라 때 세운 벽이다. 그 책들은 진시황의 분서를 피해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공자의 직계 9대손인 공부가 벽 속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역사

중국 진(秦)나라 시황제의 분서(焚書)로 인하여 한(漢)나라 때에는 유학과 관련된 서적이 전해오지 않았다. 다행히 갱유(坑儒)를 면한 일부 유학의 박사들이 그 때까지 생존해 있어 이들을 통하여 경서를 재편집하게 되었다. 이에 한대의 서체인 예서(隸書)로 정리된 경서가 나왔는데 이른바 '금문 경서'이다. 그러던 중 한(漢) 무제(武帝) 때 노나라 공왕(恭王)이 자신의 정원을 확장하기 위해 옛 공자의 저택을 허물다가 벽 속에서 논어를 비롯한 경전들을 발견하였다. 진시황의 분서를 피해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공자의 직계 9대손인 공부가 벽 속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이 때 발견된 경서들은『예기(禮記)』,『상서(尙書)』,『춘추(春秋)』,『논어(論語)』,『효경(孝經)』 등이 있으며, 벽 속에서 발견된 경서라 하여 벽중서(壁中書)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쓰인 문자체가 당시의 문자가 아니라 하여 고문(古文)이라 불렀고, 이 고문으로 쓰인 경서들을 고문 경서라고 한다. 금문 경서는 박사를 두어 연구하고 가르쳤으나, 고문 경서는 재야에서 일부 사람에 의하여 연구되고 있었다. 이 벽중서의 출현은 후대에 경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금고문논쟁(今古文論爭)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고문 경서의 출현을 기념하기 위해 명나라 때 세운 것이 노벽(魯壁)이다.

관련 용어

두고종례칠서벽경(杜槀鍾隷漆書壁經)

글씨로는 두도(杜度)의 초서(草書)와 종요(鍾繇)의 예서(隸書)가 있고, 글로는 죽간(竹簡)에 칠서(漆書)로 된 과두(蝌蚪)의 글과, 공자(孔子)의 후손이 살던 집 벽 속에서 나온 경서가 있다. 前文(전문)의 이미 수집한 분전 속에는 각종 귀중한 것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이와 같은 것이 더욱 귀중한 것이었다. 창힐이 글자를 처음 만들었고 진나라 하급 관리가 예서를 만들었으며 두도초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초서는 지금의 중국어 간체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종요예서 중에서 소예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나라 공왕이 공자의 사당을 수리하다가『서경(書經)』을 찾았는데 대나무에 옻칠을 하여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2011, 조기형, 이상억
『중국사』, 2008, 신승하, 위키미디어 커먼즈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 장현근 외 1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