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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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옥편

『옥편(玉篇)』은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고야왕(顧野王)이 543년 편찬한 부수별 한자사전이다. 자서로서는 설문해자, 자림(字林) 다음으로 오래 되었다. 총 30권, 5백42부수로 되어있다. 『옥편』은 중국 최초의 해서를 대상으로 한 자전이다. 남조 때의 양나라의 고야왕에 의해 편찬되었다. 당·송 때 수정과 증보를 거쳤다. 지금 전해지는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은 원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청나라 말 여서창과 나진옥이 일본에서 원본의 일부를 발견했다. 중국에는 원본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없으며 일본에서 발견된 잔권들은 국보로 지정되었다.

옥편의 등장 시기

옥편의 저서 시기인 위진남북조 시기는 한자가 예서에서 해서로 변화했으며, 한자의 사용과 수량이 증가함으로써 이체자가 대량으로 출현했던 때이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상세한 자전들이 출현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위나랑 장읍(張揖)의 『고금자고(古今字詁)』, 서진 여침(呂枕)의 『자림(字林)』, 양나라 고야왕(顧野王, 519~581)의 『옥편(玉篇)』 등이 있다.

옥편의 특징

옥편은 옛문헌의 용례를 인용한 주석을 붙여 다양한 의미를 기술하고자 하였으며, 고야왕 자신의 생각을 '야왕안(野王案)'으로 표시한 것도 있다. 옛 글자와 이체자에도 자세한 주석을 붙였으며, 이체자가 있는 경우에 그것을 나열해 어떤 부수에 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이런 방대한 주석은 설문해자의 극단적으로 짧은 주석과 매우 대조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옥편의 후세본

후세본으로 당나라 고종 때인 674년에 손강(孫强)은 원본 『옥편』의 내용을 수정하고 표제자를 첨가하여 상원본(上元本) 「옥편」을 펴냈다. 또 송나라 진종(眞宗, 968년~1022년) 때에 진팽년(陳彭年, 961년~1017년) 등은 황제의 명령을 받아 손강(孫强)이 수정한 「옥편」의 내용을 토대로 삼아 증보하고 수정하여 1013년에 「대광익회 옥편(大廣益會玉篇)」 38권을 펴냈다.

또한 수록 글자 수는 청나라 말기 여서창과 나진옥 등이 재편집한 『옥편』의 경우 1만6천9백17자, 송나라 진팽년(陳彭年)이 상원본 옥편을 토대로 편수한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의 경우 2만2천5백61자에 이르고 있다. 이 자서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옥편』은 후세의 한자자전 편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송나라 때의 유편(類篇)이나 명나라 때의 자휘(字彙) 정자통(正字通) 등이 이 체제를 따랐다. 『옥편』은 특히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지금도 원래 고유명사이던 『옥편』을 일반적인 한자자전의 이름으로 사용할 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고야왕

고야왕
  • 다방면에 깊은 조예

남조 진(陳)나라 오군(吳郡) 오현(吳縣) 사람. 자는 희풍(希馮)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했고, 성장하자 경사(經史)에 정통했으며, 천문과 지리, 충전기자(蟲篆奇字)도 익혔다. 또한 단청(丹靑)에도 뛰어나 양선성왕(梁宣城王)이 고현(古賢)의 상을 그리게 했는데, 왕포(王褒)가 상찬(像贊)을 써서 당시 사람들이 ‘이절(二絶)’이라 불렀다.

양무제(梁武帝) 대동(大同) 4년(538) 태학박사(太學博士)가 되었다. 진나라에 들어 국자박사에 오르고, 황문시랑(黃門侍郞)을 거쳐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지냈다. 양나라 때 태학박사 등을 지냈고, 진나라 때는 벼슬이 광록경(光祿卿)에 이르렀다.

  • 『옥편』을 저술하다

훈고학(訓詁學)에 정통했는데, 고금문자(古今文字)의 형체와 훈고를 수집하고 고증하여 16,017자를 540부로 구분한 『옥편(玉篇)』을 저술했다. 이 책은 양무제 대동 9년(543) 완성되었다. 원서는 지금은 잔본만 남아 있고, 청나라 여서창(黎庶昌)의 영인본이 전한다. 고야왕은 하룻밤 사이에 옥편을 저술했다는 야사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하루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관련 유적

송나라 때 서적 『운간지(雲間志)』 등의 기록에 근거하면, 당나라 말기 오대 시대에 금산 정림에 보운사(寶雲寺)를 중건할 때 고야왕을 기념하는 고공사(顧公祠)를 지었다고 한다. 최근에 들어서는 2006년에 장쑤성 우장(吴江)시에서 고야왕 기념관인 고공묘(顧公廟)를 중건하여 2007년 완성되었다. 그의 무덤은 장쑤성 쑤저우시 석호(石湖) 남쪽 기슭의 하주촌(下舟村)에 남아 있다.

참고자료

  • 하영삼, 『한자의 세계-기원에서 미래까지』, 신아사
  • 임종욱,김해명,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0
  •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