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주 왕실의 쇠퇴와 춘추시대의 도래) |
(→춘추오패) |
||
5번째 줄: | 5번째 줄: | ||
== [[춘추오패]] == | == [[춘추오패]] == | ||
+ | 중국 춘추시대 5인의 패자(覇者)를 일컫는 말로 오백(五伯)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제국간 혹은 제후간에 맺어지는 회합이나 맹약을 회맹(會盟)이라 하며, 회맹의 맹주가 된 자를 패자라고 한다. 이들 패자는 모두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웠는데, 이는 춘추시대가 패자들이 당대 최고의 실력자이긴 했지만 주 왕실을 쓰러뜨려 천하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존왕(尊王)’의 기치를 내걸고 주나라 왕을 정신적인 지주로 인정하던 시대임을 보여준다. | ||
+ | |||
+ | 춘추시대는 평왕이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된다. ‘춘추(春秋)’시대는 공자가 지은 『춘추』가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 사이의 역사를 싣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약해져 천자의 위력이 없어지고 제후들이 강성해져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되는 시기이다. 차례로 다섯 제후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를 춘추오패라 한다. 춘추오패는 제(齊)나라 환공, 진(晉)나라 문공, 진(秦)나라 목공, 초(楚)나라 장왕, 오(吳)나라 부차, 월(越)나라 구천 가운데 5명의 군주를 지칭한다. | ||
== [[전국시대로의 이행]] == | == [[전국시대로의 이행]] == |
2016년 6월 27일 (월) 11:52 판
중국의 역사 | |||||||
---|---|---|---|---|---|---|---|
신화와 고대 | |||||||
선사 시대 | |||||||
황하・장강 문명 | |||||||
신화·삼황오제 | |||||||
하 기원전 2070?~기원전 1600? | |||||||
상 기원전 1600?~기원전 1046? | |||||||
주 기원전 1046?~기원전 256 | |||||||
서주 기원전 1046?~기원전 771 | |||||||
동주 기원전 771~기원전 256 | |||||||
춘추 시대 기원전 771~453 | |||||||
전국 시대 기원전 453~221 | |||||||
제국의 시대 | |||||||
진 기원전 221~기원전 206 | |||||||
한 기원전 202~서기 220 | |||||||
전한 기원전 202~서기 8 | |||||||
신 8~23 | |||||||
후한 25~220 | |||||||
삼국 시대 220~280 | |||||||
위 220~265 촉한 221~263 오 229~280 | |||||||
진 265~420 | |||||||
서진 265~316 | |||||||
동진 317~420 | 오호 십육국 시대 304~439 | ||||||
남북조 시대 439~589 | |||||||
수 581~618 | |||||||
당 618~907 무주 690~705 | |||||||
오대십국시대 907~960 |
요 916~1125 | ||||||
송 960~1279 |
|||||||
북송 960~1127 |
서하 1038~1227 | ||||||
남송 1127~1279 |
금 1115~1234 |
||||||
원 1271~1368 | |||||||
명 1368~1644 | |||||||
청 1636~1912 | |||||||
현대의 중국 | |||||||
중화민국 (북양정부, 국민정부) 1912~1949 | |||||||
중화인민공화국 1949~현재 |
|||||||
주 왕실의 쇠퇴와 춘추시대의 도래
서주 중기부터 주나라 왕실의 세력은 쇠약해졌고 동천 이후, 제후들의 보호 없이는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주 왕실의 쇠퇴를 몇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서주와 비교했을 때 동주의 영토는 매우 감소하였다. 동천 이후 이전 영토의 일부는 진(秦) 양공에게 사여되었고, 옛 도읍 호경을 비롯한 일부의 영토는 견융족(犬戎族)에게 점거당했다. 또 일부 지방은 제후들에게 침탈 당해 춘추 중기 이후 실질적 주나라의 영토는 당시 중소 제후국의 영토와 비슷한 정도였다. 또 조빙제도가 그 의미를 상실하게되었다. 천자의 권위가 높던 서주 때, 제후가 천자에 정기적으로 조빙하던 제도가 있었는데, 춘추시대에 이르러서는 조빙제도가 유명무실 해졌다. 영토와 백성이 감소하고 제후들의 조빙마저 끊기자 주나라 왕실의 재원은 바닥나게 된다. 주 평왕(平王)이 죽었을 때 장례비용이 없어 노나라에 사신을 보내 장례비용을 구걸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군대의 규모 역시 축소되었다. 서주시대의 주 천자는 최소 14사의 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동주시대에 이르러 그 수가 감소하여 주의 군사력은 제후국보다 못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주 천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제후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춘추오패
중국 춘추시대 5인의 패자(覇者)를 일컫는 말로 오백(五伯)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제국간 혹은 제후간에 맺어지는 회합이나 맹약을 회맹(會盟)이라 하며, 회맹의 맹주가 된 자를 패자라고 한다. 이들 패자는 모두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웠는데, 이는 춘추시대가 패자들이 당대 최고의 실력자이긴 했지만 주 왕실을 쓰러뜨려 천하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존왕(尊王)’의 기치를 내걸고 주나라 왕을 정신적인 지주로 인정하던 시대임을 보여준다.
춘추시대는 평왕이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된다. ‘춘추(春秋)’시대는 공자가 지은 『춘추』가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 사이의 역사를 싣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약해져 천자의 위력이 없어지고 제후들이 강성해져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되는 시기이다. 차례로 다섯 제후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를 춘추오패라 한다. 춘추오패는 제(齊)나라 환공, 진(晉)나라 문공, 진(秦)나라 목공, 초(楚)나라 장왕, 오(吳)나라 부차, 월(越)나라 구천 가운데 5명의 군주를 지칭한다.
전국시대로의 이행
춘추시대의 사회
참고 문헌
- <이야기 중국사1>, 김희영, 2006년
- <아틀라스 중국사>, 박한제, 김형종, 김병준 외 2명, 2007년
-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안정애, 2012년
- <백양 중국사1>, 백양, 2014년
- <춘추 전국의 패자와 책사들>, 박인수, 2001년
-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신성곤, 윤혜영,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