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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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현재 고고학계는 정착 생활, 도기 제작, 농업의 출현을 구석기시대와 구별할 수 있는 신석기시대 발단의 3대 중요 지표로 삼는다. 각 지역마다 신석기시대가 도래한 시기가 다른데,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 조기 유적이 화북 장강 중류와 화남에서 일부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선조들이 1만~8천 년 전에 이미 도기를 제작하고 농업에 종사하며 정착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대륙의 지리
중국 문명은 동유라시아 중 좀더 온난한 지대라는 특별한 지리적 환경에서 발달하였다. 이 지역은 광대하고 지리적 조건이 다양해서 초기 거주자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기도, 제약을 가하기도 하였다. 중국 본토는 동서남북으로 약 5,500킬로미터에 걸쳐 있어 매우 광활하다. 광활하게 뻗어 있는 땅 사이사이에는 산맥들이 놓여 있고, 산맥을 사이로 거주에 적당한 강의 유역들이 나누어진다. 이러한 강 유역을 중심으로 최초의 인간 정착 촌락이 확립되었다.
두개의 수계(水系, 북쪽의 황허, 중앙의 양쯔)가 동쪽으로 흐르며 중국 본토를 통과한다.
황허는 서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북 사막을 통과하면서 방향을 바꾸어 황토 구릉 지대를 통과해 북에서 남쪽으로 급류한다. 황토는 바람에 날려온 미세한 먼지가 대지를 덮고 있는 누르스름한 흙으로, 원시 도구들로도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비옥하다. 황허는 황토 산지 남쪽 끝에서 갑자기 동쪽으로 흐름을 바꾸고 침적토로 인해 누르스름한 색깍을 띠며 폭 1,600미터 정도 되는 제방 사이로 흘러간다. 황허는 충적토 평원을 이리저리 통과하여 바다에 도달한다.
양쯔 강은 여러 지류의 물이 합류하여 강물의 양은 황허보다 훨씬 더 많다. 양쯔 강은 티베트 산지에서 발원하여 쓰촨(四川) 분지를 에워싸고 있는 산을 가로질러, 높이 3,300미터 이상 되는 가파른 절벽이 있는 장대한 협곡을 통과해 1,600킬로미터 가량 동쪽으로 흐르다가 바다에 합류한다.
전기 신석기 시대
전기 신석기 시대는 사회적 특징으로 구별하면 대략 모계 씨족 사회의 말기에 해당한다. 문헌상의 기록과 비교하면 삼황 시기의 전기에 해당하고, 신화 시기의 전반기에 해당한다. 고고학상의 유물의 연대 측정 결과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6000-3000년에 해당한다. 주요 문화로는 배리강문화, 앙소문화, 하모도문화, 세석기 문화, 기하문양도기문화 등이 있다.
배리강문화
기원전6~5천년.
1977년 하남성 신정현 배리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배리강문화는 대략 기원전5500년에서 4900년 사이의 농업 취락 유적지로서 집터, 아궁이, 도요지가 있고 석기, 도기, 골기 도구 및 생활 용품이 출토되었다. 석기는 농기구 위주이고 경작과 수확하는 도구, 즉 돌도끼, 돌삽, 돌낫과 양식을 가공하는 도구, 즉 돌 절구판, 돌 절구봉이 포함되었다. 도요지의 발견은 도기 제조업이 이미 일정한 규모에 이르렀음을 증명하고 있다. 도기는 진흙을 재료로 하는 홍도 위주이고, 모래가 섞인 홍도가 그 다음이다. 도기는 술잔, 사발, 쟁반, 단지, 항아리 등이 있다. 이것으로 7-800년 전에 중원 지역에는 이미 비교적 안정적인 농업과 정착 생활이 출현하였고, 粟(조)재배를 위주로 하는 밭농사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1]
앙소문화
기원전5~3천년.
앙소 문화는 중국에서 가장 일찍 발견된 문화이며 분포 면적이 가장 광범위하고 그 문화적인 성취 또한 매우 탁월한 신석기 문화이다. 이는 중국 신석기 문화 구조의 형성과 변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중 반파와 강채 유적은 전형적인 모계 씨족 문화 유적이다. 앙소문화는 2천 년 동안 지속되면서 성격이 크게 변하고 분포 범위 또한 넓어져 매우 많은 유형을 지녔다. 앙소 문화 전기는 통일성이 강했으며 채도의 발전이 극에 달했다. 후기에는 퇴조하여 외부에서 들여온 문화 요소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2]
앙소문화의권의 경제 생활은 원시 농업이 위주였고, 농작물로는 조와 보리 등이 있다. 그 외에 가축으로는 돼지, 개, 닭을 사육하고, 어렵과 채집은 농업의 보조 수단으로 존재하였다.
하모도문화
기원전6~5천년.
절강성 여요현 하모도에서 발견된 문화를 하모도 문화라고 한다. 7000년 전의 논농사 유물(즉 낱알, 벼 줄기, 벼 잎), 물소와 사슴의 어깨뼈를 이용하여 만든 농기구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의 농업이 쟁기 경작의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세석기문화
기하문양 도기 문화
중기 신석기 시대
중기 신석기 시대의 사회적 특징으로는 부계 씨족 중심의 부락사회가 등장하고, 씨족 구성원이 확대되어 부족단계에 이르렀다. 문헌상의 기록과 비교하면, 삼황시기 후기에 해당하고 신화 시기의 후반기에 해당한다. 고고학상의 유물의 연대 측정결과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4~2천 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비교적 전형적이고 대표성이 있는 문화는 황하 중하류의 용산문화와 황하 상류의 제가문화, 황하와 회하 평야의 대문구 문화, 전당강유역의 양저문화가 있다. 이들 문화의 주요 특징으로는 당시 인구의 증가와 활동 범위의 확대 등으로 부계 씨족 사회가 등장하였다.
용산문화
주요 특징으로 부권(父權)이 강하고 골복(骨卜)의 유행과 수공업의 분업이 이루어졌으며, 전쟁이 빈번하였던 사회이다.
제가문화
대문구문화
양저문화
4200년~5300년 전의 장강 하류 태호 유역은 농업이 발달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양저문화는 그중에서 특히 발달한 선사 시대 문화이다. 양저문화는 고지대 건축을 대량으로 갖고있으며 당시의 옥기는 미적으로 뛰어나 중국 선사시대 옥기 예술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