庶
語源
집집마다 막(屋棚) 아래에서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1] 금문에서는 돌(石)과 불(火)로 구성되어 불에 돌을 올려놓고 굽는 요리법을 그렸는데, 이후 집(广)이 더해지고 자형이 조금 변해 지금처럼 되었고[2], 지금의 ‘많다’, ‘보통의’라는 뜻이 나왔다. 관련 단어로는 서민(庶民), 서무(庶务, 잡무(杂务)), 서자(庶子)가 있다.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높은 건물 밑에 무리가 있는 모습(屋下眾也)이라고 해석하고 있다.[3]
文化
당시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평민백성이든 간에 식사하는 시간이 되면 반드시 밥을 먹어야 했다.[4] 또한 당시 鼎과 鬲 같은 조리기구는 크고 무거웠으며 가열하는 것이 어려웠다. 요리법은 돌솥으로 끓은 물을 이용해 재료를 삶는 것이었다. 《조전비(曹全碑)》의 예서에서는 금문에 있던 ‘불(火)’의 형태를 ‘물 네 점(灬)’으로 바뀌었는데[5], 물 네 점으로 바뀐 배경에는 바로 당시 요리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백성', '많음'으로 의미가 확대된 데에는 여러 사람들이 밥을 먹기 위해 둘러앉은 것에서 의미가 확대되었다[6]는 주장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것에서 변형되었다[7]는 주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