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촉·오
후한 말
후한 말은 십상시의 난이 일어난 189년부터 헌제가 조비에게 국위를 선양한 220년까지를 말한다.
- 동탁의 정권 장악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매관매직으로 고위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무능한 관리들은 이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고의 금을 해제하고 청의파 관료들을 등용하여 난을 진압하게 된다. 이들 청의파의 대표격인 사람이 원소였는데, 그는 영제가 붕어하고 소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하진과 모의하여 환관들을 주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태후가 이를 허락지 않자 하진은 양주의 군벌인 동탁을 불러들여 하태후를 위협하고자 하였다. 이 때 하진이 환관들의 계략에 빠져 살해당하니, 원소는 이를 빌미로 병력을 이끌고 환살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중상시 단규, 장양 등이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동탁에게 붙잡혀 죽는다. 두 세력이 다투다가 공멸한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동탁은 낙양에 입성하며 대장군 하진의 동생인 하묘의 군을 흡수하여 정권을 잡았고, 이내 외척세력이 버티고 있는 소제를 폐하고 후견인이 없는 유협을 제위에 올리니 원소는 감히 맞서지 못하고 탈출하여 기주로 도망하였고, 원술, 조조 등도 고향으로 도망치게 된다. 하태후와 소제를 독살한 동탁은 마침내 낙양에서 전횡을 일삼기 시작한다.
- 반동탁 연합
이듬해 1월, 원소는 자신을 맹주로 하여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劉代), 하내태수 왕광(王匡), 진류태수 장막(張邈), 광릉태수 장초(張超), 동군태수 교모(喬瑁), 산양태수 원유(袁遺), 제북상 포신(鮑信) 등과 동시에 거병하여 반동탁 연합을 형성하니 각기 군세가 수만을 헤어렸다. 2월, 동탁은 연합군의 거병 소식을 듣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이 때 반동탁 연합군은 동탁군의 위세에 눌려 쉬이 진군하지 못하였다. 조조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앞장서 군을 이끌고 나아갔다가 동탁의 부장 서영에게 대패하여 타고 있던 말이 화살에 맞아 위험에 처했으나, 종제인 조홍의 말을 빌려 타고 겨우 달아났다. [1] 연합군이 모이기 시작하여 10여만에 이르렀으나, 그들은 매일 주연을 펼치며 진격하려 하지 않으니 조조가 이를 질책하며 계책을 건의하였다.[2] 그러나 이는 장막 등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유대와 교모는 서로를 미워하여 다투다가, 유대가 교모를 죽였다. 원소와 한복은 유우를 황제로 세우려 하였으나 조조가 반대하였고,[3] 유우 또한 끝내 이를 거절하였다.
불탄 낙양을 정리하던 도중에 손견은 심상치 않은 우물을 발견하여 그 안을 파보도록 하니, 그 안에 전국옥새가 있었다. 그런데 이를 눈치챈 원술은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옥새를 내놓도록 협박하였고, 손견은 아내의 안전을 위해 원술에게 옥새를 내주었다. 연합군은 서로 간에 공을 다투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동탁군에게 연신 밀렸고, 연합군의 맹주인 원소가 한복을 속여 기주를 차지하고 군사를 물려 돌아가자 연합군은 해체되었다. 연합군을 이끌던 군벌들이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가서 세력을 키우니, 비로소 군웅할거의 막이 열렸다.
삼국 분립
삼국 시대(三國時代)는 2세기 말, 즉 위(魏)가 건립된 220년부터 오(吳)가 멸망한 280년까지 이르는 시기를 가리킨다. 후한 말기, 각종 자연재해와 경제상황 악화로 크게 위·촉·오(魏·蜀·吳)의 세 나라로 나뉘게 된다.
위
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