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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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iyuan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5월 14일 (토) 10:5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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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本紀는 삼황오제부터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천하에 권력을 행하던 왕조나 제왕들의 사적을 인물별로 연대순으로 엮어 기록한 것이다. 본기가 12편이라는 것은 역법으로 볼 때 십이 간지와 관련되어 있는데, 구성은 시간적 순서와 인물의 비중을 고려하여 안배한 것이다. 사마천은 본기에서 그 당시까지 문헌에 편린으로 남아있던 황제를 비롯한 오제의 신화를 역사화해 재조명하였고, 하, 은, 주 삼대의 각 사건과 인물들을 역사성과 현실성에 입각하여 입체감 있게 그렸으며, 특출한 역사가답게 각 제왕들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고도 밀도 있게 행간에 녹여 냈다.
권1<오제본기五帝本紀>제1: 사기의 첫 편으로 약 기원전30세기초 ~ 기원전21세기 초 원고시대의 오제(황제, 전욱, 제곡, 요, 순)에 대한 이야기와 그 당시의 전쟁사를 기록해놓았다. 하대 이전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이야기이므로 사료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전설적 색채가 농후하다. 황제는 전설 시대의 희를 성씨로 하는 신격화된 시조로서 중국 최초의시조신이다. 그러나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기를 꺼린 사마천은 황제를 단지 성인으로 묘사했을 뿐 인간성을 상실한 신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황제가 매우 총명하고 능력이 있었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
권2<하본기夏本紀>제2: 사마천은 <오제본기>에서 혁명과 왕조교체의 문제를 다루면서 중국 신화 속에서 역사의 원형을 탐색하고, 이 <하본기>편에서 본격적인 중국 역사의 서막을 언급한다. <하본기>에 기술된 하나라는 전설 속의 오제 시대와 역사적으로 실증된 은대의 중간에 해당하는 시기로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해당된다. 하대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약 기원전21세기~기원전16세기 하대의 여러 부락들의 연합과 발전을 기록하고 있는 이<하본기>는 현대 하대연구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쓰이고 있다.
권3<은본기殷本紀>제3: 기원전1600년~1046년 중국역사상 2번째 나라인 은 즉, 상商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마천은 주로 <<상서>>와 <<시경>>에 근거하여 은 왕조의 발전사를 완전하게 기술했는데, <<국어>>와<<춘추좌씨전>>에서도 자료를 보완했다. 은나라의 흥망 역시 덕의 유무와 관련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은본기>가 <오제본기> 및 <하본기>와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권4<주본기周本紀>제4: 이 편은 사기에 실린 장편 거작의 하나로 800년 왕조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데 서주시대와 춘추전국시대를 포괄한다. 주로 서주 역사에 중점을 두었으면서도 평왕이 동천한 이후 각 제후들의 세가도 잘 드러나 있다. 이 편은 주왕조의 흥성이 덕을 쌓은 결과라는 점과 더불어, 요임금 때 농업의 스승이었던 후직이 주 왕조의 선조라는 데서 보이듯 농업을 중시하는 주 왕조의 특징을 잡아 공유公劉나 고공단보古公亶父 등의 업적이 바로 농업 생산과 관련된 점 등을 강조한다. 도입부는 , 처럼 신화적 식채로 가득하지만 주나라가 37명이 왕위에 올랐고 867년간 유지된 국가로 무왕에서 난왕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권5<진본기秦本紀>제5: 주나라 서쪽에 위치한 진나라는 이적의 땅으로 불리던 작은나라였으나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천하 통일의 기초를 확립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것이 <진본기>편이다. <진본기>는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룬 진시황 이전의 나라에 대해 서술한 부분으로, 천하의 권세가 처음부터 진나라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사마천은 진나라가 변법을 내세워 성과를 얻었음에도 후인들이 과소평가하는 것이 슬프다고 하였다. 사마천은 <진본기> 역시 <<국어>>,<<춘추좌씨전>>,<<전국책>> 등을 저본으로 삼아 지었다. 전국 시대를 풍미했던 일곱 강국 중에서 진나라의 통일을 방해할 만큼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한나라는 진나라와 나라였으므로, 상당한 분략이 이 두나라와 관련된 사건과 전쟁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권6<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제6: 이 편에서 사마천은 진시황 일생의 공과를 상세하게 밝히고, 이어서 진나라 2세황제자영이 정권을 잡은 부분을 덧붙여 서술하고 있다. 진나라의 천하 통일, 진나라 국력의 막강함, 그리고 진나라가 최전성기에 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진나라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진시황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그의 위대한 업적 이면에 짙게 드리워진 탐욕과 교만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후인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제왕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덧붙여 사마천은 진시황제가 자리에 있었던 40여년 동안의 중대한 정치적 사건, 특히 천하를 통일하는 이면이 복잡다단한 진행 과정을 비교적 명쾌한 어조로 서술했다. 그리고 그 서술방식은 진시황 자신의 삶만큼이나 격동적이고 활기가 넘찬다. 이 편은 <이사열전>,<몽염열전>,<백기왕전열전>과 자매편이라고 할 만큼 긴밀한 관련이 있다.
권7<항우본기项羽本紀>제7: <항우본기>는 <<사기>> 130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편명 중 하나이며, 문학사에서도 전기 문학의 수작으로 평가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항우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한 거록전투, 삶과 죽음의 길목을 사이에 두고 긴박하게 진행되는 홍문연, 그리고 해하전투에서 나타난 항우의 심리적 갈등 묘사 등은 명장면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 편에서 주목할 점은 사마천이 항우의 일생을 제왕들의 전기인 <본기>에 편입한 이유이다. 이는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공적을 높이 평가한 데다 더 나아가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기간에 항우가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던 데 기인한다. 당시에 명목상 황제인 의제가 있기는 했지만,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이되어 제후 왕을 임명하는 등 사실상 제왕의 위치였다고 할 수 있다.
권8<고조본기高祖本紀>제8:
권9<여태후본기吕太后本紀>제9:
권10<효문본기孝文本紀>제10:
권11<효경본기孝景本紀>제11:
권12<효무본기孝武本紀>제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