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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골문]]과 [[금문]]의 彝자는 [[회의자]]로서, 두 손으로 두 날개를 뒤집어 묶은 닭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닭의 머리 옆에 있는 두 점은 닭을 죽일 때 흩뿌려진 핏방울로, 닭을 죽여 피를 취해 제사에 | + | [[갑골문]]과 [[금문]]의 彝자는 [[회의자]]로서, 두 손으로 두 날개를 뒤집어 묶은 닭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닭의 머리 옆에 있는 두 점은 닭을 죽일 때 흩뿌려진 핏방울로, 닭을 죽여 피를 취해 제사에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br> |
+ | 彝의 본래 뜻은 닭을 죽여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지만, 파생되어 이후에 제사 종묘의 기구가 모두 “이기(彝器)”라고 불렸으며, 일반적으로 제기를 가리킨다. 또 특별히 고대의 일종의 술 담그는 그릇을 가리킨다. 이외에, 彝는 또 법도, 관습(常規)의 뜻이 있다. <br> | ||
[[소전]]과 [[예서]]에서 새를 나타내던 작은 점이 잘못 쓰여 米가 되었고, 새의 머리는 글자의 상부가 되어서 현재의 자형(字型)이 되었다. | [[소전]]과 [[예서]]에서 새를 나타내던 작은 점이 잘못 쓰여 米가 되었고, 새의 머리는 글자의 상부가 되어서 현재의 자형(字型)이 되었다. | ||
− | [이기(彝器)]:고대의 청동제 그릇. 鍾, 鼎, 尊, | + | [이기(彝器)]:고대의 청동제 그릇. 鍾, [[鼎]], [[尊]], [[俎]]와 같은 종류. |
[이륜(彝倫)]: 천지인의 일상생활에서의 도리. | [이륜(彝倫)]: 천지인의 일상생활에서의 도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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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에서는 “彝는, 종묘에서 항상 쓰는 그릇이다.”고 설명했다. | [[설문해자]]에서는 “彝는, 종묘에서 항상 쓰는 그릇이다.”고 설명했다. | ||
− | 彝의 자형은 닭 날개를 서로 엇갈리게 꺾어서 피를 토하게 만들고 있는 형태다. 닭 입의 언저리에는 서너 점의 핏방울 모습을 찍어 두었다. 제기를 만들면 우선 그것을 정화시키는 釁(피칠할 흔)이라는 의례를 행하였는데, 그것에 닭 피를 사용하였던 것이다.<ref>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한자- 백가지 이야기』, 황소자리, pp.224-225</ref> | + | 彝의 자형은 닭 날개를 서로 엇갈리게 꺾어서 피를 토하게 만들고 있는 형태다. 닭 입의 언저리에는 서너 점의 핏방울 모습을 찍어 두었다. 제기를 만들면 우선 그것을 정화시키는 釁(피칠할 흔)이라는 의례를 행하였는데, 그것에 닭 피를 사용하였던 것이다.<ref>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한자- 백가지 이야기』, 황소자리, pp.224-225.</ref> |
− | 닭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아마도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전에 닭의 피로 제기의 부정을 씻었을 것이다. 또한 彝에는 ‘늘’이라는 뜻도 있어서 항상 불변을 의미하기도 했다. 청동기는 원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기이다. 조상신의 지배 아래 삶을 영위하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조상신에 대한 숭배로 이어졌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청동기는 이기(彝器)라고도 불린다. 곧, 彝器는 언제까지고 변치않을 조상신에 대한 숭배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ref> 시라카와 시즈카(윤철규 옮김), 『한자의 기원』, 이다미디어 | + | 닭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아마도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전에 닭의 피로 제기의 부정을 씻었을 것이다. 또한 彝에는 ‘늘’이라는 뜻도 있어서 항상 불변을 의미하기도 했다. 청동기는 원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기이다. 조상신의 지배 아래 삶을 영위하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조상신에 대한 숭배로 이어졌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청동기는 이기(彝器)라고도 불린다. 곧, 彝器는 언제까지고 변치않을 조상신에 대한 숭배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ref> 시라카와 시즈카(윤철규 옮김), 『한자의 기원』, 이다미디어, p.233.</ref> |
彝의 실물을 보면, 은상시기에 자주 썼던 닭 모양의 장식 무늬가 있다. 주나라 전기의 변화는 크지 않고, 후기엔 장식 무늬로 짐승 모양을 많이 썼다. 갑골문의 彝자는, 상의 그릇 모양에 의거해, 두 손으로 닭을 높이 들어 올린 모습이다. 이것으로 彝의 그릇 모양을 나타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금문의 쓰는 방식은 다양하다. 문자가 통일되기 이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자형은 여전히 닭([[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또한 닭의 몸에 실(絲帛,제사 용품)이 더해졌다. [[소전체]]에서는 두 손이 쌀, 실, 돼지 머리(彑,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그릇 모양의 변화뿐만 아니라, 제사 물품과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서에서는 소전체의 필획을 이어받는 동시에, 소전체의 두 손을 ‘大’로 적어(해서에선 또廾(받들 공)으로 적었다) 상형자의 흐름에서 벗어났다. | 彝의 실물을 보면, 은상시기에 자주 썼던 닭 모양의 장식 무늬가 있다. 주나라 전기의 변화는 크지 않고, 후기엔 장식 무늬로 짐승 모양을 많이 썼다. 갑골문의 彝자는, 상의 그릇 모양에 의거해, 두 손으로 닭을 높이 들어 올린 모습이다. 이것으로 彝의 그릇 모양을 나타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금문의 쓰는 방식은 다양하다. 문자가 통일되기 이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자형은 여전히 닭([[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또한 닭의 몸에 실(絲帛,제사 용품)이 더해졌다. [[소전체]]에서는 두 손이 쌀, 실, 돼지 머리(彑,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그릇 모양의 변화뿐만 아니라, 제사 물품과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서에서는 소전체의 필획을 이어받는 동시에, 소전체의 두 손을 ‘大’로 적어(해서에선 또廾(받들 공)으로 적었다) 상형자의 흐름에서 벗어났다. |
2021년 3월 9일 (화) 15:05 기준 최신판
語源
갑골문과 금문의 彝자는 회의자로서, 두 손으로 두 날개를 뒤집어 묶은 닭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닭의 머리 옆에 있는 두 점은 닭을 죽일 때 흩뿌려진 핏방울로, 닭을 죽여 피를 취해 제사에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彝의 본래 뜻은 닭을 죽여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지만, 파생되어 이후에 제사 종묘의 기구가 모두 “이기(彝器)”라고 불렸으며, 일반적으로 제기를 가리킨다. 또 특별히 고대의 일종의 술 담그는 그릇을 가리킨다. 이외에, 彝는 또 법도, 관습(常規)의 뜻이 있다.
소전과 예서에서 새를 나타내던 작은 점이 잘못 쓰여 米가 되었고, 새의 머리는 글자의 상부가 되어서 현재의 자형(字型)이 되었다.
[이기(彝器)]:고대의 청동제 그릇. 鍾, 鼎, 尊, 俎와 같은 종류.
[이륜(彝倫)]: 천지인의 일상생활에서의 도리.
文化
설문해자에서는 “彝는, 종묘에서 항상 쓰는 그릇이다.”고 설명했다.
彝의 자형은 닭 날개를 서로 엇갈리게 꺾어서 피를 토하게 만들고 있는 형태다. 닭 입의 언저리에는 서너 점의 핏방울 모습을 찍어 두었다. 제기를 만들면 우선 그것을 정화시키는 釁(피칠할 흔)이라는 의례를 행하였는데, 그것에 닭 피를 사용하였던 것이다.[1]
닭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아마도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전에 닭의 피로 제기의 부정을 씻었을 것이다. 또한 彝에는 ‘늘’이라는 뜻도 있어서 항상 불변을 의미하기도 했다. 청동기는 원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기이다. 조상신의 지배 아래 삶을 영위하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조상신에 대한 숭배로 이어졌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청동기는 이기(彝器)라고도 불린다. 곧, 彝器는 언제까지고 변치않을 조상신에 대한 숭배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2]
彝의 실물을 보면, 은상시기에 자주 썼던 닭 모양의 장식 무늬가 있다. 주나라 전기의 변화는 크지 않고, 후기엔 장식 무늬로 짐승 모양을 많이 썼다. 갑골문의 彝자는, 상의 그릇 모양에 의거해, 두 손으로 닭을 높이 들어 올린 모습이다. 이것으로 彝의 그릇 모양을 나타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금문의 쓰는 방식은 다양하다. 문자가 통일되기 이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자형은 여전히 닭(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또한 닭의 몸에 실(絲帛,제사 용품)이 더해졌다. 소전체에서는 두 손이 쌀, 실, 돼지 머리(彑,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그릇 모양의 변화뿐만 아니라, 제사 물품과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서에서는 소전체의 필획을 이어받는 동시에, 소전체의 두 손을 ‘大’로 적어(해서에선 또廾(받들 공)으로 적었다) 상형자의 흐름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