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기여
(최신 | 오래됨) (다음 50개 | 이전 50개) (20 | 50 | 100 | 250 | 500) 보기
- 2016년 5월 15일 (일) 10:14 (차이 | 역사) . . (+389) . . 새글 예서 (새 문서: 하,은,주 3대의 예는 감손(减损)하기도 하고 증익(增益)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각각 힘쓰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를 인...)
- 2016년 5월 15일 (일) 10:13 (차이 | 역사) . . (+32) . . 서
- 2016년 5월 15일 (일) 10:13 (차이 | 역사) . . (+1) . .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12 (차이 | 역사) . . (0) . . 사기 (→사기의 구성)
- 2016년 5월 15일 (일) 10:12 (차이 | 역사) . . (+2) . .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12 (차이 | 역사) . . (+3) . .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10 (차이 | 역사) . . (-4) . . 진초지제월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9 (차이 | 역사) . . (+8) . . 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9 (차이 | 역사) . . (+1) . .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8 (차이 | 역사) . . (+284) . . 새글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 (새 문서: 국가에 현상,양장이 있으면 백성에게는 사표가 된다. 한제국이 흥기한 이래로 장,상,명신의 연표를 저술해 현자는 그 치적을 기록하고 불...)
- 2016년 5월 15일 (일) 10:08 (차이 | 역사) . . (-1,026) . . 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8 (차이 | 역사) . . (+460) . . 새글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새 문서: 제후가 강성하게 되자 오,초칠국이 합종,연횡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 후 제후들의 자제수가 너무 많아 작록과 봉읍이 없을 경우...)
- 2016년 5월 15일 (일) 10:07 (차이 | 역사) . . (+283) . . 새글 건원이래후자연표 (새 문서: 한나라 융성기에 북방으로 강대한 흉노를 토벌하고 남방으로는 강력한 월越을 주벌했다. 이토록 오랑캐를 정복해서 그 무공으로 열...)
- 2016년 5월 15일 (일) 10:07 (차이 | 역사) . . (+598) . . 새글 고조공신후자연표 (새 문서: 한 고조의 대공신인 보필,고굉의 신하들은 한부를 받아 작위를 얻고 그 은택은 후손에까지 미쳤다. 그러나 그것이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 2016년 5월 15일 (일) 10:07 (차이 | 역사) . . (-1,409) . . 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6 (차이 | 역사) . . (+393) . . 새글 한흥이래제후연표 (새 문서: 한 제국이 흥기한 이래로 금상폐하의 태초 연간에 이르기까지 1백년은 제후가 폐립되고 혹은 분봉되고 혹은 영지가 삭감되어 그 후계자에...)
- 2016년 5월 15일 (일) 10:06 (차이 | 역사) . . (+429) . . 새글 진초지제월표 (새 문서: 진秦이 포학했으므로 초楚나라 사람 진승,오광이 반란을 일으켰다. 항씨(항우项羽)가 난폭하게도 회왕을 살해했으므로 ...)
- 2016년 5월 15일 (일) 10:05 (차이 | 역사) . . (0) . . 육국연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5 (차이 | 역사) . . (-1,074) . . 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5 (차이 | 역사) . . (+292) . . 새글 육국연표 (새 문서: 춘추시대 이후로 배신이 정권을 잡고 강국들이 서로 왕이라 칭했다. 진에 이르러서 중원의 제후국을 병합하고 그들의 봉토를 없애...)
- 2016년 5월 15일 (일) 10:04 (차이 | 역사) . . (+469) . . 새글 십이제후연표 (새 문서: 유왕,여왕 이후로는 주 왕실이 쇠미하여 제후들이 정권을 오로지 했다. 이에 관해서는 각국의 기록에 빠져 있는 것도 있다. 그러...) (최신)
- 2016년 5월 15일 (일) 10:04 (차이 | 역사) . . (+309) . . 새글 삼대세표 (새 문서: 하,은,주 3대의 사적은 너무나 오래 되어 그 연기를 생각할 수가 없다. 아마 계보系譜의 서에서 채록했을 것이라 생각되며, 고문서들은 어...)
- 2016년 5월 15일 (일) 10:03 (차이 | 역사) . . (+60) . . 표
- 2016년 5월 15일 (일) 10:01 (차이 | 역사) . . (+10) . . 오제본기
- 2016년 5월 15일 (일) 10:00 (차이 | 역사) . . (+4) . . 은본기
- 2016년 5월 15일 (일) 10:00 (차이 | 역사) . . (+4) . . 항우본기
- 2016년 5월 15일 (일) 09:59 (차이 | 역사) . . (+67) . . 본기
- 2016년 5월 15일 (일) 09:58 (차이 | 역사) . . (+20) . . 사기 (→사기의 구성)
- 2016년 5월 14일 (토) 20:35 (차이 | 역사) . . (+515) . . 사기 (Hodong2 (토론)의 4776판 편집을 되돌림)
- 2016년 5월 14일 (토) 20:34 (차이 | 역사) . . (-515) . . 사기
- 2016년 5월 14일 (토) 20:29 (차이 | 역사) . . (-7) . . 토론:사기
- 2016년 5월 14일 (토) 20:29 (차이 | 역사) . . (+105) . . 토론:사기
- 2016년 5월 14일 (토) 20:28 (차이 | 역사) . . (+326) . . 토론:사기
- 2016년 5월 14일 (토) 19:41 (차이 | 역사) . . (+8) . . 사기 (→인본주의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34 (차이 | 역사) . . (-326) . . 사기 (→역사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28 (차이 | 역사) . . (+5) . . 사기 (→역사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28 (차이 | 역사) . . (+12) . . 사기 (→역사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27 (차이 | 역사) . . (+4) . . 사기 (→유가사상(儒家思想)과 황노사상(黃老思想))
- 2016년 5월 14일 (토) 19:26 (차이 | 역사) . . (+11) . . 사기 (→유가사상(儒家思想)과 황노사상(黃老思想))
- 2016년 5월 14일 (토) 19:26 (차이 | 역사) . . (+4) . . 사기 (→사마천의 사기 저술 동기)
- 2016년 5월 14일 (토) 19:25 (차이 | 역사) . . (-2) . . 사기 (→사마천의 사기 저술 동기)
- 2016년 5월 14일 (토) 19:25 (차이 | 역사) . . (+33) . . 사기 (→사마천의 사기 저술 동기)
- 2016년 5월 14일 (토) 19:23 (차이 | 역사) . . (-8) . . 사기 (→경제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23 (차이 | 역사) . . (0) . . 사기 (→경제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21 (차이 | 역사) . . (-4) . . 사기 (→인본주의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21 (차이 | 역사) . . (+3) . . 사기 (→역사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18 (차이 | 역사) . . (+4) . . 사기 (→역사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17 (차이 | 역사) . . (+36) . . 사기 (→유가사상(儒家思想)과 황노사상(黃老思想))
- 2016년 5월 14일 (토) 19:16 (차이 | 역사) . . (+12) . . 사기 (→사기의 사상)
- 2016년 5월 14일 (토) 19:14 (차이 | 역사) . . (+16) . . 사기 (→사마천의 사기 저술 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