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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알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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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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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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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 거연한간.PNG|100픽셀|왼쪽|링크=거연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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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산각석.jpg|200픽셀|왼쪽|링크=각석]]
'''[[거연한간]](居延漢簡)'''중국 간쑤성 북서부의 에티나 강(黑河) 유역에서 발굴된 한나라 시대의 1만여 편의 문서들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현전 가장 이른 시기의 문서는 기원 전 102년([[전한]] [[무제|漢武帝]] 태초太初 3), 가장 늦은 것은 기원 후 30년([[후한]] 光武帝 건무建武 6)의 것이다. 이 지역은 당대 행정구역 상 거연현에 해당하며, 전한 [[무제]](漢武帝)유목민족 [[흉노]](匈奴)를 공격, 제압하고자 설치한 하서4군(河西四郡) 가운데 최전방 거점으로 기능한 곳이다. 상호견제에 있어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한 무제는 기원 전 102년 이 지역을 얻은 후 지은 거연성에 감시초소와 둔전 등과 같은 시설을 만들어 이 곳을 방어하였다. 국경 방위를 위해 내지에서 이주해온 관리, 병사들과 그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거주하며 군사, 행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작성된 행정문서를 포함한 많은 문서들을 통틀어 거연한간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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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석(秦刻石)은 중국의 오래된 비문(碑文)이다. [[진시황]]은 서기 221년 육국을 통일한 후, 수차례 각지로 순시를 나갔다. 군신들은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며 만대에 그 업적을 남기고자 돌에 글자를 새겼으니 이를 진칠각석(秦七刻石)이라 했다. <br>
'''[[거연한간|자세히 읽기...]]'''
+
진 2세도 기원전 209년에 순시를 나갔는데, 기존의 각석 옆에 자신의 조서를 덧새기도록 하였다. 진 2대의 조서의 전문은 79자이며 글씨체는 칠각석과 같았다. 그것들은 모두 진의 [[이사]]가 육국을 통일한 후 보편적으로 유통한 진의 문자인 [[소전]]체로 쓰여져 전서가 후대에 전수되게 하였다. 진각석은 후대의 문학작품과 비지문(碑志文)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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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석|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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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자-->
 
<!-- 오늘의 한자-->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한자어원문화사전|오늘의 한자]]</div><div id="mp-it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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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한자어원문화사전 찾아보기|오늘의 한자]] </div><div id="mp-itn"></div>
[[파일:법칙칙.JPG|400픽셀|오른쪽|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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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ng|400픽셀|오른쪽|링크=]]
'''[[]]'''자는 원래 [[]]과 刀로 이루어졌는데, 鼎이 貝로 바뀌어 지금과 같은 형채가 되었다. 상나라 말기나 동주 초기 갑골문의 칙()자는 하나의 세발 솥과 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세발 솥은 신성함을 나타내기 위해 색채가 찬란하게 주조됐다. 위의 솥과 칼과 같이 용도가 다른 청동기를 제작하는 데는 서로 다른 합금의 원칙이 지켜져야 했다. 그래서 종류가 다른 금속의 합금 비율 원칙에 따라 성능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문자는 또한 ‘규칙’, ‘원칙’, ‘표준’의 의미로 인식되었다. 이로부터 법규, 모범 등의 뜻이 파생됐다고 한다. <br>
+
[[갑골문]]과 [[금문]][[]]자는 앞을 응시하는 두 눈과 눈썹을 강조한 큰 수리부엉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엉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처럼() 사물이나 대상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고문자 가운데 見자 대신 [[囧]](빛날 경)자로 구성된 것도 있는데, 이는 벽에 뚫린 창문으로 밝게 비치는 달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br>
또한, 이러한 준칙과 모범을 바로 시행해야 한다는 뜻에서 ‘바로(=즉)’라는 의미도 나왔다고 한다. 한편 왕의 법령은 구리로 주조해 정으로 만드는 것에서 법칙이라는 의미가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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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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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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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중국어 알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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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어 지식백과-->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유행어|이런 중국어 알고 있니?]]</div><div id="mp-it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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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 중국어 지식백과</div><div id="mp-itn"></div>
[[파일:여진문자로 적은 여진문.png|150픽셀|왼쪽|링크=여진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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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문자|여진문자]]'''북방 민족의 한 갈래이며 [[]]()나라를 세운 여진민족의 문자이다. 여진문자는 금나라 태조 아골타(阿骨打)의 명에 따라 희윤(希尹)과 엽로(葉魯)를 비롯한 사람들이 만든 문자이며 1119년 반포되었다. 이후 희종(熙宗) 완안단(完顔亶) 또한 여진문자를 만들어 1138년에 반포했다. 따라서 희윤 등이 만든 여진문자는 ‘여진대자(女眞大字)’라 하고, 희종이 만든 여진문자는 ‘여진소자(女眞小字)’라고 한다.그러나 여진대자와 여진소자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금사(金史)』를 비롯해 현재 발견된 기록이 없다. 현재 『금사』에는 희윤이 거란 문자를 모방하여 여진문자를 만들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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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다운로드.jpg|150픽셀|왼쪽|링크=거란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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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어(契丹語)10~12세기에 걸쳐서, 현재의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북부와 몽골 지역에 세운 요나라(遼=거란제국, 재위916-1125)에서 거란 민족이 사용된 언어다. 또 [[거란문자]](契丹文字)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재위916-926)가 중국 문화에 대응하여 자국어 및 자국 고유 문자에 대한 민족적 자각에 바탕을 두어 기원후 920년에 만들어 공표한 문자이다. 거란대자와 거란소자라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문자 체계가 알려져 있다. 이 중 거란소자는 태조의 동생 야율질라(耶律迭剌)가 위구르의 사자에게 그 언어와 문자를 배웠고, 그에 따라 다스렸다는 기술이 『요사(遼史)』에서 볼 수 있으며, 거란대소자는 요대를 통해 사용되었고, 금대(金代, 1115-1234)까지 사용된 후 사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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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문자|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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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문자|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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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인물-->
 
<!-- 중국의 인물-->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인물|중국의 인물]]</div><div id="mp-itn"></div>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인물|중국의 인물]]</div><div id="mp-itn"></div>  
[[파일:허신상.PNG|100px|왼쪽|링크=허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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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허신상.PNG|120px|오른쪽|링크=허신]]
'''[[허신]](許愼)'''은 『[[설문해자]]』를 집필한 [[후한]] 시대의 학자이다. 허신의 이름은 신愼이며 자字는 숙중叔重인데, ‘공손하게 삼감’이라는 의미를 지닌 중重을 자字로 한 것이다. 또한, 신愼과 중重 사이에는 ‘신중’이라는 어휘가 있어 글자 사이에 밀접성이 있기도 하다. <br> 허신은 여남 소릉의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여남군에는 37개의 성(집락)이 속하여 있었는데 소릉은 그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현재의 허난성 옌청현으로 카이펑에서 남남서로 약 1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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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許愼)'''은 『[[설문해자]]』를 집필한 [[후한]] 시대의 학자이다. 허신의 이름은 신愼이며 자字는 숙중叔重인데, 같은 ‘공손하게 삼감’이라는 의미를 지닌 중重을 자字로 한 것이다. 또한, 신愼과 중重 사이에는 ‘신중’이라는 어휘가 있어 글자 사이에 밀접성이 있기도 하다. <br>
성품이 순독하고, 젊어서부터 경전을 두루 공부하여, 마융이 늘 그를 추대하고 공경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두고 말하길 “오경무쌍허숙증五經無雙許淑重(오경에 있어서는 허신과 쌍벽을 이룰만한 이가 없다)”이라 하였다.  『오경이의 五經異義』와  『[[설문해자]]』 14편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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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은 여남 소릉의 사람이다. 여남은 군의 이름인데, 기록에 따르면 여남군에는 37개의 성(집락)이 속하여 있었다. 소릉은 그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현재의 허난성 옌청현, 카이펑에서 남남서로 약 1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br>
 
'''[[허신|자세히 읽기...]]'''
 
'''[[허신|자세히 읽기...]]'''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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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왼쪽 -->
 
</div>
 
 
<!-- 본문 오른쪽 -->
 
<div id="mp_contentsR" style="width: 40%; height: 100%; float: right;">
 
<!-- 수업 자료실 -->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수업 자료실]]</div><big>'''[[수업 자료실|중국어문화학과 수업 자료실]]</big>''': 중국어문화학과에서 개설된 과목 가운데 수업과 관련된 모든 활동과 자료들이 위키문법을 기반으로 구성된 새로운 개념의 수업자료실 <br>
 
'''2019년 1학기 수업자료실'''
 
*[[중국고전의현대적가치]]
 
*[[중국문화사1]]
 
'''2018년 2학기 수업자료실'''
 
*[[중국문자의이해]]
 
</div>
 
 
<!-- 중국문화 지식 포털 -->
 
<!-- 중국문화 지식 포털 -->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중국문화 지식 포털]]</div>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중국문화 지식 포털]]</div>
[[파일:한자어원문화사전로고.png|왼쪽|300픽셀|링크=한자어원문화사전 찾아보기]]
 
[[문화로읽는중국문자]] 수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한자의 어원과 문화에 대한 종합사전<br />
 
  
[[파일:중국역사사전로고.png|왼쪽|300픽셀|링크=중국의 역사]]
+
최근 [[수업 자료실|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의 수업]] 을 통해 생산된 지식 항목들. <br>
[[중국문화사1]][[중국문화사2]] 수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중국의 역사 관련 종합 지식백과사전<br />
+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2),
 +
[[석고문]](石鼓文), 
 +
[[화이론]](華夷論),
 +
[[토법고로]](土法高爐),
 +
[[이체자]](異體字),
 +
[[거란문자]](契丹文字),
 +
[[고힐강]](顧頡剛),
 +
[[공표비]](孔彪碑),
 +
[[하]](夏)(2)
 +
[[명조체]](明朝體)(2)
 +
[[서계]](書契)
 +
[[각석]](刻石)(2)
 +
[[조충문]](鳥蟲文), [[옥편]](玉篇) , [[형성자]](形聲字) ,[[명조체]](明朝體), [[단옥재]](段玉裁) , [[왕국유]](王國維) , [[암각화]](岩刻畵) , [[주음부호]](注音符號) , [[서하문자]](西夏文字) , [[대우정]](大盂鼎) ,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 , [[리궤]](利簋) , [[하존]](何尊) , [[시라가와 시즈카]](白川靜) , [[쯔놈]](𡨸喃) , [[나진옥]](羅振玉) , [[왕의영]](王懿榮) , [[죽간]](竹簡), [[금문]](金文)(2), [[방상씨]](放相氏), , [[동파문자]](東巴文字) , [[회의자]](會意字)  , [[혼돈]](混沌) ,[[난정서]](蘭亭序) , [[호궤]](胡簋) , [[삼서설]](三書說) , [[곽점초간]](郭店楚簡), [[회남자]](淮南子) , [[노벽]](魯壁)
 +
</div>
  
[[파일:중국인물사전로고1.png|왼쪽|300픽셀|링크=중국 인물사전]]
 
중국어문화학과의 다양한 [[수업 자료실|전공 교과목]]을 통해 만들어지는 중국인물 관련 종합사전<br />
 
 
'''[[중국 역사 고사성어 사전]]''' :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만들어진 고사성어 종합사전 <br />
 
'''[[중국어 유행어 사전]]''' : 2008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어 유행어를 정리한 사전 <br />
 
'''[[중국 인문지리사전]]''' : 중국의 인문지리에 대한 종합 백과사전 <br />
 
이밖에도 수업을 통해 생산된 다양한 [[중국문화 사전]]은 '''[[중국문화 사전|여기]]'''에서 볼 수 있다.
 
</div>
 
 
<!-- 위키백과 참여하기 -->
 
<!-- 위키백과 참여하기 -->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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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실습 페이지|'''연습장에서 위키문법 연습''']]: 위키 문서 작성 전 여기서 먼저 훈련을 해보자</div>
 
[[위키 실습 페이지|'''연습장에서 위키문법 연습''']]: 위키 문서 작성 전 여기서 먼저 훈련을 해보자</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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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6일 (금) 15:0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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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각석.jpg

진각석(秦刻石)은 중국의 오래된 비문(碑文)이다. 진시황은 서기 221년 육국을 통일한 후, 수차례 각지로 순시를 나갔다. 군신들은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며 만대에 그 업적을 남기고자 돌에 글자를 새겼으니 이를 진칠각석(秦七刻石)이라 했다.
진 2세도 기원전 209년에 순시를 나갔는데, 기존의 각석 옆에 자신의 조서를 덧새기도록 하였다. 진 2대의 조서의 전문은 79자이며 글씨체는 칠각석과 같았다. 그것들은 모두 진의 이사가 육국을 통일한 후 보편적으로 유통한 진의 문자인 소전체로 쓰여져 전서가 후대에 전수되게 하였다. 진각석은 후대의 문학작품과 비지문(碑志文)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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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png

갑골문금문자는 앞을 응시하는 두 눈과 눈썹을 강조한 큰 수리부엉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엉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처럼(串) 사물이나 대상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고문자 가운데 見자 대신 (빛날 경)자로 구성된 것도 있는데, 이는 벽에 뚫린 창문으로 밝게 비치는 달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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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지식백과
다운로드.jpg

거란어(契丹語)는 10~12세기에 걸쳐서, 현재의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북부와 몽골 지역에 세운 요나라(遼=거란제국, 재위916-1125)에서 거란 민족이 사용된 언어다. 또 거란문자(契丹文字)는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재위916-926)가 중국 문화에 대응하여 자국어 및 자국 고유 문자에 대한 민족적 자각에 바탕을 두어 기원후 920년에 만들어 공표한 문자이다. 거란대자와 거란소자라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문자 체계가 알려져 있다. 이 중 거란소자는 태조의 동생 야율질라(耶律迭剌)가 위구르의 사자에게 그 언어와 문자를 배웠고, 그에 따라 다스렸다는 기술이 『요사(遼史)』에서 볼 수 있으며, 거란대소자는 요대를 통해 사용되었고, 금대(金代, 1115-1234)까지 사용된 후 사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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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상.PNG

허신(許愼)은 『설문해자』를 집필한 후한 시대의 학자이다. 허신의 이름은 신愼이며 자字는 숙중叔重인데, 같은 ‘공손하게 삼감’이라는 의미를 지닌 중重을 자字로 한 것이다. 또한, 신愼과 중重 사이에는 ‘신중’이라는 어휘가 있어 글자 사이에 밀접성이 있기도 하다.
허신은 여남 소릉의 사람이다. 여남은 군의 이름인데, 기록에 따르면 여남군에는 37개의 성(집락)이 속하여 있었다. 소릉은 그 성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현재의 허난성 옌청현, 카이펑에서 남남서로 약 1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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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의 수업 을 통해 생산된 지식 항목들.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2), 석고문(石鼓文), 화이론(華夷論), 토법고로(土法高爐), 이체자(異體字), 거란문자(契丹文字), 고힐강(顧頡剛), 공표비(孔彪碑), (夏)(2) 명조체(明朝體)(2) 서계(書契) 각석(刻石)(2) 조충문(鳥蟲文), 옥편(玉篇) , 형성자(形聲字) ,명조체(明朝體), 단옥재(段玉裁) , 왕국유(王國維) , 암각화(岩刻畵) , 주음부호(注音符號) , 서하문자(西夏文字) , 대우정(大盂鼎) ,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 , 리궤(利簋) , 하존(何尊) , 시라가와 시즈카(白川靜) , 쯔놈(𡨸喃) , 나진옥(羅振玉) , 왕의영(王懿榮) , 죽간(竹簡), 금문(金文)(2), 방상씨(放相氏), , 동파문자(東巴文字) , 회의자(會意字) , 혼돈(混沌) ,난정서(蘭亭序) , 호궤(胡簋) , 삼서설(三書說) , 곽점초간(郭店楚簡), 회남자(淮南子) , 노벽(魯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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