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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오늘의 알찬 글|알찬 글]]</div><div id="mp-itn"></div>
[[파일:공수포.jpg|100픽셀|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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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산각석.jpg|200픽셀|왼쪽|링크=각석]]
동양에서 화폐가 사용된 기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의하면 중국에서 최초로 화폐가 사용된 것은 전설상의 삼황(三皇) 중 한명인 신농(神農)의 시대로 그는 백성들의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장터를 만들고, 물물교환을 편하게 하기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렇지만 전설이 아닌 역사에서 화폐의 정확한 기원을 찾는 것은 어려운데, 확실한 것은 적어도 [[춘추]][[전국]]시대부터 화폐를 사용한 경제가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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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석(秦刻石)은 중국의 오래된 비문(碑文)이다. [[진시황]]은 서기 221년 육국을 통일한 후, 수차례 각지로 순시를 나갔다. 군신들은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며 만대에 그 업적을 남기고자 돌에 글자를 새겼으니 이를 진칠각석(秦七刻石)이라 했다. <br>
[[춘추]][[전국]]시대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 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국가경영'의 인식이 최초로 나왔던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의 시대로“그들이 밟지 않은 사유의 땅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평할 정도로 넓고 깊은 사유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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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2세도 기원전 209년에 순시를 나갔는데, 기존의 각석 옆에 자신의 조서를 덧새기도록 하였다. 진 2대의 조서의 전문은 79자이며 글씨체는 칠각석과 같았다. 그것들은 모두 진의 [[이사]]가 육국을 통일한 후 보편적으로 유통한 진의 문자인 [[소전]]체로 쓰여져 전서가 후대에 전수되게 하였다. 진각석은 후대의 문학작품과 비지문(碑志文)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br>
이 시기부터 중국에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의 한 갈래로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즉, 현대적 의미에서의 경제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화폐는 중요한 통치수단으로 국가가 관리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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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석|자세히 읽기...]]'''
'''[[중국의 화폐|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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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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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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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오늘의 좋은 글]]</div><div id="mp-it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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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한자어원문화사전 찾아보기|오늘의 한자]] </div><div id="mp-itn"></div>
[[파일:대분기.PNG|100픽셀|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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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ng|400픽셀|오른쪽|링크=觀]]
서구는 어떻게 역사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을까? 서구는 18세기 이전만 해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주도권을 영국을 기점으로 하는 서구 열강들이 손에 쥐게 되었다. 위도와 경도 그리고 0시는 당연히 영국을 기준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수많은 국제 표준들, 그리고 최초라는 수식은 서구의 몫이 되어져 갔다. 아시아 문화권은 1800년까지만 해도 훨씬 우월한 문명을 자랑했다. 문화, 과학 등 어떠한 면도 유럽의 어떠한 나라보다 동양은 그 문화적 우수성을 뒤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청나라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을 놓고 따지면 서유럽을 앞섰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구수를 살펴봐도 청나라는 당시 약 3억 8100만 명이었고, 서유럽은 1억 6900만 명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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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과 [[금문]]의 [[觀]]자는 앞을 응시하는 두 눈과 눈썹을 강조한 큰 수리부엉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엉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처럼(串) 사물이나 대상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고문자 가운데 見자 대신 [[]](빛날 경)자로 구성된 것도 있는데, 이는 벽에 뚫린 창문으로 밝게 비치는 달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br>
왜 그전까지 어떠한 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았던 청나라, 혹은 서구 열강의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이 아닌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해서 세상의 주도권을 산업화의 선두로 올라갈 수 있었는가?  중국의 산업혁명이 서구의 그것과 어떠한 식으로 다르게 진행되었고, 왜 산업혁명이 늦었으며 산업화 진행에도 실패했던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특성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대분기]]’론이다. <br> '''[[대분기|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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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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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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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어 지식백과-->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역사|중국의 역사]] </div><div id="mp-itn"></div> [[파일:측천무후.JPG|100픽셀|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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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 중국어 지식백과</div><div id="mp-itn"></div>
측천무후는 당나라 고종의 황후이자 무주의 황제이다. 중국에서는 그녀를 무측천이라 부르기도 한다.<br>
 
무측천은 중국 역사에 있어서 사실상 유일한 여성 황제이다. 한의 여후(呂后)나 청의 서태후(西太后)처럼 황제의 실권을 차지했던 여성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계속 황후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에 비해 무측천은 제1의 실권자 자리를 차지하고 스스로 황제자리에 군림했다. 또한 그녀의 통치기간은 태종이 통치하던 정권의 치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아 [[무주의 치]] 라고 불리며, 이후 당의 전성기인 [[현종]] 때의 개원의 치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br>
 
  
'''[[무측천|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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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다운로드.jpg|150픽셀|왼쪽|링크=거란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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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어(契丹語)는 10~12세기에 걸쳐서, 현재의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북부와 몽골 지역에 세운 요나라(遼=거란제국, 재위916-1125)에서 거란 민족이 사용된 언어다. 또 [[거란문자]](契丹文字)는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재위916-926)가 중국 문화에 대응하여 자국어 및 자국 고유 문자에 대한 민족적 자각에 바탕을 두어 기원후 920년에 만들어 공표한 문자이다. 거란대자와 거란소자라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문자 체계가 알려져 있다. 이 중 거란소자는 태조의 동생 야율질라(耶律迭剌)가 위구르의 사자에게 그 언어와 문자를 배웠고, 그에 따라 다스렸다는 기술이 『요사(遼史)』에서 볼 수 있으며, 거란대소자는 요대를 통해 사용되었고, 금대(金代, 1115-1234)까지 사용된 후 사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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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문자|자세히 읽기...]]'''
 
</div>
 
</div>
 
  
 
<!-- 중국의 인물-->
 
<!-- 중국의 인물-->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goodArticle"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5em 0 0;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인물|중국의 인물]]</div><div id="mp-itn"></div>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인물|중국의 인물]]</div><div id="mp-itn"></div>  
[[파일:추이젠.jpg|100픽셀|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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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허신상.PNG|120px|오른쪽|링크=허신]]
추이젠(崔健)은 중국 록(摇滚)의 아버지로 불린다. 중국의 브루스 스프링스틴, 중국의 밥 딜런으로 소개된다. 우리나라의 신중현과 김민기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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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許愼)'''『[[설문해자]]』를 집필한 [[후한]] 시대의 학자이다. 허신의 이름은 신愼이며 자字는 숙중叔重인데, 같은 ‘공손하게 삼감’이라는 의미를 지닌 중重을 자字로 한 것이다. 또한, 신愼과 중重 사이에는 ‘신중’이라는 어휘가 있어 글자 사이에 밀접성이 있기도 하다. <br>
중국 조선족 출신으로 1961년 연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으며 원래는 트럼펫 연주자였다. 1981년 북경관현악단의 트럼펫 주자로 입단한다. 당시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 유행하기 시작한 서구 문물과 대중음악에 영향을 받아 그곳에서 ‘칠합판’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1986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평화의 해’기념 공연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m7uk0-vlpP0 일무소유(一无所有]를 연주하며 중국 대중의 환호를 받게 된다. 「일무소유(一无所有)」는 그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음악으로써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는다. 그 무렵 혁명 가곡인 「난니완(南泥湾)」을 편곡해서 중국 혁명의 실패를 비판하고 이로 인해 정부로부터 한해 동안 연주 활동을 금지당하는 제재를 받게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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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은 여남 소릉의 사람이다. 여남은 군의 이름인데, 기록에 따르면 여남군에는 37개의 성(집락)이 속하여 있었다. 소릉은 성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현재의 허난성 옌청현, 카이펑에서 남남서로 약 1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br>
1987년 결국 북경관현악단에서 제명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1988년 처음 발표한 음반인 <일무소유(一无所有)>에서 기존의 서구식 대중음악의 형식에 중국 전통 악기를 끌어들여 중국적 록 음악을 만들어 냈다.<br> 1989년 [[1989천안문사건]] 당시 밴드와 함께 「일무소유(一无所有)」를 시위 현장에서 연주했고 이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시위가로 불렸다. 이 공연으로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반체제 가수’의 이미지로 알려진다.  그 후 당국에 의해 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방세계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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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자세히 읽기...]]'''
'''[[추이젠|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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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 /본문 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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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 본문 오른쪽 -->
 
<div id="mp_contentsR" style="width: 36.99%; height: 100%; float: right;">
 
 
<!-- 중국문화 지식 포털 -->
 
<!-- 중국문화 지식 포털 -->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중국문화 지식 포털]]</div>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중국문화 지식 포털]]</div>
*<big>'''최근 생성된 지식 항목</big>''': [http://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D%8A%B9%EC%88%98:%EC%B5%9C%EA%B7%BC%EB%B0%94%EB%80%9C 최근 생성된 지식항목]에서는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모든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여 집단지성을 통해 생성한 지식 항목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 생성된 지식 항목들은 대부분 관련 수업시간에 학습하고 토론한 것들을 위키문법에 맞추어 편집 정리한 것이다.
+
 
*<big>'''[[중국문화 사전|중국문화 사전]]</big>''': [[중국문화 사전]][[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수업 자료실|학과 수업]]을 통해 생산되고 종합된 중국어와 중국문화 관련 지식을 관련 주제별로 분류하여 종합 정리한 것이다  
+
최근 [[수업 자료실|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의 수업]] 을 통해 생산된 지식 항목들.  <br>
 +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2),
 +
[[석고문]](石鼓文), 
 +
[[화이론]](華夷論),
 +
[[토법고로]](土法高爐),
 +
[[이체자]](異體字),
 +
[[거란문자]](契丹文字),
 +
[[고힐강]](顧頡剛),
 +
[[공표비]](孔彪碑),
 +
[[하]](夏)(2)
 +
[[명조체]](明朝體)(2)
 +
[[서계]](書契)
 +
[[각석]](刻石)(2)
 +
[[조충문]](鳥蟲文), [[옥편]](玉篇) , [[형성자]](形聲字) ,[[명조체]](明朝體), [[단옥재]](段玉裁) , [[왕국유]](王國維) , [[암각화]](岩刻畵) , [[주음부호]](注音符號) , [[서하문자]](西夏文字) , [[대우정]](大盂鼎) ,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 , [[리궤]](利簋) , [[하존]](何尊) , [[시라가와 시즈카]](白川靜) , [[쯔놈]](𡨸喃) , [[나진옥]](羅振玉) , [[왕의영]](王懿榮) , [[죽간]](竹簡), [[금문]](金文)(2), [[방상씨]](放相氏), , [[동파문자]](東巴文字) , [[회의자]](會意字) , [[혼돈]](混沌) ,[[난정서]](蘭亭序) , [[호궤]](胡簋) , [[삼서설]](三書說) , [[곽점초간]](郭店楚簡), [[회남자]](淮南子) , [[노벽]](魯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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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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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수업 자료실]]</div><big>'''[[수업 자료실|중국어문화학과 수업 자료실]]</big>''': 중국어문화학과에서 개설된 과목 가운데 수업과 관련된 모든 활동과 자료들이 위키문법을 기반으로 구성된 새로운 개념의 수업자료실 <br>
 
2016년 1학기 수업자료실 운영 과목<br>
 
*[[중국문화사1 2016년 1학기 강의|중국문화사1]]
 
*[[중국문화사2 2016년 1학기 강의|중국문화사2]]
 
*[[중국고전의현대적가치 2016년 1학기 강의|중국고전의현대적가치]]
 
*[[중국명시감상 2016년 1학기 강의|중국명시감상]]
 
*[[현대중국의문화와사회 2016년 1학기 강의|현대중국의문화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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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있나요? -->
 
<div id="mp_participation" class="mp_contents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overflow: auto; background-color: #eef6ff;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알고 있나요?</div> 중국어문화학과 위키백과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위키백과에 바란다]]에 남겨주신 의견은 새로운 위키백과 구성에 큰힘이 됩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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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 권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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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p_contentsboxtitle"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이 한 권의 책]]</div>
 
[[파일:반지성주의를 말하다.PNG|100픽셀|오른쪽]]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우리는 왜 퇴행하고 있는가'''<br>
 
“지성은 개인의 속성이 아니다 지성은 집단적으로 발동한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 지성적인지 아닌지는 그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한 지식의 양이나 지능 지수나 연산능력에 따라 판별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또는 그 사람의 발언이나 행동에 의해 그가 속한 집단 전체의 지적능력이 그가 없을 때보다 훨씬 높아질 경우, 사후적으로 그 사람은 지성적인 인물이었다고 판정할 수 있다. <br>
 
반면, 개인적인 지적 능력은 어지간히 높은 듯하지만, 그 사람이 있음으로써 주위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의심의 눈초리가 번뜩이며, 노동의욕이 저하하고, 아무도 창의적인 제안을 하지 않게 되는 일이 현실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아니, 지극히 빈번히 일어난다. 그 사람이 활발하게 자신의 지력을 발휘하는 탓에 그가 소속한 집단 전체의 지적 능력이 내려갈 때, 나는 그런 사람을 반지성적이라고 간주한다.”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우치다 다쓰루 內田樹)
 
'''[[이 한 권의 책#반지성주의를 말하다|자세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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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커뮤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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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mp_sisterProjects" class="mp_outer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id="mp_sisterProjects" class="mp_outerbox" style="border:1px solid #a7d7f9; margin: 0.5em 0 0.5em; vertical-align:top; padding: 1em; -moz-border-radius: 0.8em; -webkit-border-radius: 0.8em; border-radius: 0.8em;">
<div style="background-color: #bbddff; margin-bottom: 0.7em; padding: 0.2em 0.5em; font-size: 1.2em; line-height: 1.2em; overflow: visible; font-weight: bold; -moz-border-radius: 0.5em; -webkit-border-radius: 0.5em; border-radius: 0.5em;"><div style="float: left; margin: -8px 8px -8px 0px;"></div>[[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커뮤니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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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어문화학과십년사.png|250픽셀|링크=중국어문화학과 10년사]]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big>'''학과 소개</big>''']]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 대한 거의 모든 것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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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학센터.png|200픽셀|링크=https://sinology.org]]
 
 
[[사람들|<big>'''사람들</big>''']]  중국어문화학과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  <br/>
 
 
 
[[학과 활동|<big>'''학과 활동</big>''']]  {{색|red|[[답사|학술 답사]]  [[학술제]]  [[C-Camp]]  [[C-Café]]  [[교환학생]]  [[소모임|학과 소모임]]}}<br/>
 
 
 
[[교환학생|<big>'''교환학생 정보</big>''']]  교환학생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 <br/>
 
 
 
[[학생회 |<big>'''중국어문화학과 학생회</big>''']]  중국어문화학과 학생회 활동을 위한 열린 공간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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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1일 (금) 11:13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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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학 위키백과 Sino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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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각석.jpg

진각석(秦刻石)은 중국의 오래된 비문(碑文)이다. 진시황은 서기 221년 육국을 통일한 후, 수차례 각지로 순시를 나갔다. 군신들은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며 만대에 그 업적을 남기고자 돌에 글자를 새겼으니 이를 진칠각석(秦七刻石)이라 했다.
진 2세도 기원전 209년에 순시를 나갔는데, 기존의 각석 옆에 자신의 조서를 덧새기도록 하였다. 진 2대의 조서의 전문은 79자이며 글씨체는 칠각석과 같았다. 그것들은 모두 진의 이사가 육국을 통일한 후 보편적으로 유통한 진의 문자인 소전체로 쓰여져 전서가 후대에 전수되게 하였다. 진각석은 후대의 문학작품과 비지문(碑志文)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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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png

갑골문금문자는 앞을 응시하는 두 눈과 눈썹을 강조한 큰 수리부엉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엉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처럼(串) 사물이나 대상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고문자 가운데 見자 대신 (빛날 경)자로 구성된 것도 있는데, 이는 벽에 뚫린 창문으로 밝게 비치는 달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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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지식백과
다운로드.jpg

거란어(契丹語)는 10~12세기에 걸쳐서, 현재의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북부와 몽골 지역에 세운 요나라(遼=거란제국, 재위916-1125)에서 거란 민족이 사용된 언어다. 또 거란문자(契丹文字)는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재위916-926)가 중국 문화에 대응하여 자국어 및 자국 고유 문자에 대한 민족적 자각에 바탕을 두어 기원후 920년에 만들어 공표한 문자이다. 거란대자와 거란소자라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문자 체계가 알려져 있다. 이 중 거란소자는 태조의 동생 야율질라(耶律迭剌)가 위구르의 사자에게 그 언어와 문자를 배웠고, 그에 따라 다스렸다는 기술이 『요사(遼史)』에서 볼 수 있으며, 거란대소자는 요대를 통해 사용되었고, 금대(金代, 1115-1234)까지 사용된 후 사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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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상.PNG

허신(許愼)은 『설문해자』를 집필한 후한 시대의 학자이다. 허신의 이름은 신愼이며 자字는 숙중叔重인데, 같은 ‘공손하게 삼감’이라는 의미를 지닌 중重을 자字로 한 것이다. 또한, 신愼과 중重 사이에는 ‘신중’이라는 어휘가 있어 글자 사이에 밀접성이 있기도 하다.
허신은 여남 소릉의 사람이다. 여남은 군의 이름인데, 기록에 따르면 여남군에는 37개의 성(집락)이 속하여 있었다. 소릉은 그 성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현재의 허난성 옌청현, 카이펑에서 남남서로 약 1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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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의 수업 을 통해 생산된 지식 항목들.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2), 석고문(石鼓文), 화이론(華夷論), 토법고로(土法高爐), 이체자(異體字), 거란문자(契丹文字), 고힐강(顧頡剛), 공표비(孔彪碑), (夏)(2) 명조체(明朝體)(2) 서계(書契) 각석(刻石)(2) 조충문(鳥蟲文), 옥편(玉篇) , 형성자(形聲字) ,명조체(明朝體), 단옥재(段玉裁) , 왕국유(王國維) , 암각화(岩刻畵) , 주음부호(注音符號) , 서하문자(西夏文字) , 대우정(大盂鼎) ,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 , 리궤(利簋) , 하존(何尊) , 시라가와 시즈카(白川靜) , 쯔놈(𡨸喃) , 나진옥(羅振玉) , 왕의영(王懿榮) , 죽간(竹簡), 금문(金文)(2), 방상씨(放相氏), , 동파문자(東巴文字) , 회의자(會意字) , 혼돈(混沌) ,난정서(蘭亭序) , 호궤(胡簋) , 삼서설(三書說) , 곽점초간(郭店楚簡), 회남자(淮南子) , 노벽(魯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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